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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초속 5센티미터

등록 2014-04-01 19:07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너 그거 아니?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래. 일본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만든 3부작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에 나오는 대사다. 벚꽃이 흩날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서정적인 풍경들, 아릿아릿한 첫사랑의 감정, 사소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성적인 대화들,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는 설정들이 참 아름다운 영화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실제로 초속 몇 센티미터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것을 시계로 재볼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벚꽃이 땅으로 내려앉는 속도가 수치화되는 순간, 우리는 가벼운 전율 같은 걸 느끼게 된다.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할 틈도 주지 않고 ‘초속 5센티미터’라는 말이 우리 머릿속을 지배한다. 감성의 힘이다. 이 감성적인 정보는 화려하게 만개한 벚꽃만 쫓던 우리에게 낙화도 아름답다는 깨달음을 선사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잠깐이나마 속도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해준다.

시속 100킬로미터에 비해 초속 5센티미터는 얼마나 미약하고 보잘것없는가. 하지만 벚꽃이 지는 날, 허공에서 떨어지는 꽃잎의 속도를 한 번만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그동안 과속하면서 달려온 삶이 들여다보일지도 모른다. 김선우 시인은 “여기까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왔지만/ 여기서부터 나는 시속 1센티미터로 사라질 테다”라고 ‘마흔’이라는 시에서 쓴 적이 있다. 우리도 서서히 브레이크 좀 밟자. 속도를 줄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천천히 가야 꽃도 개미도 보인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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