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 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 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 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 춘천도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유안진 시인의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는 시의 앞부분이다. 지명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펼쳐 보이며 독자를 유쾌하게 만드는 시다. 특히 춘천은 한자 ‘춘’(春)으로 인해서 까닭도 연고도 없이, 느닷없이 가고 싶은 곳으로 그려진다.
어떤 지역의 지명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 지역으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통영에 가면 이순신 장군하고 마주앉아 생선회에다 소주 한잔 할 수 있을 테고, 함양에 가면 따뜻한 햇볕을 품은 골짜기에다 집을 지을 수 있을 테고, 여수에 가면 바닷가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날 수 있을 테다. 임실에 가면 그리운 임이 살고 있을 것 같고, 무주·진안·장수에 가면 무진장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만 같고, 양양에 가면 기가 양양하게 살아날 것만 같다. 그 어느 곳보다 물이 맑은 포구로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려면 청진을 생각하면 되고, 그믐에도 보름달을 보고 싶으면 팔공산을, 잡다한 세상사를 벗어던지고 싶다면 속리산을, 여름에도 눈이 보고 싶다면 설악산을 떠올리면 된다. 그것뿐이랴. 천천히 걷고 싶다면 산티아고라는 말을 생각하면 되고, 야생의 얼룩말 등을 타고 싶다면 세렝게티라는 말을 떠올리면 되는 거 아냐?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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