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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문정

등록 2014-04-15 18:48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정이라는 시인. 본명은 문정희다. 동명의 시인이 계셔서 이름에서 한 글자를 빼고 필명으로 삼았다. 그는 나하고 동갑인데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한때 같은 동에 살았다. 그가 시인이 되기 전후에 둘이 술 많이 마셨다. 그동안 쓴 시를 내게 자주 보여주었다. 나는 채찍을 자주 가했다. 너무 착한 척하지 마라, 시에 가족 이야기 따위 끌고 오지 마라, 눈에 보이는 것만 집착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보았노라고 때로는 뻥도 좀 쳐라, 행과 행 사이를 과감하게 건너뛰어라……. 나는 덩치 큰 이 사내에게 수없이 주문했다. 그렇지만 문정은 자주 머뭇거렸다. 그에게는 놓치기 싫은 것들이 많았던 것이다. 나는 해결해야 할 내가 너무 많아. 그래서 그는 아팠고, 작년에 죽었다. 그가 두고 떠난 원고를 추슬러 주위 친구들이 뜻을 모았다. <하모니카 부는 오빠>(애지)는 문정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다. 이 시집은 감정이 여리고 섬세한 그를 꼭 빼닮았다. 세상을 보는 눈은 연민으로 가득하고, 목소리는 욕심 없이 차분하며, 그가 매만진 언어는 숨소리가 고르다. 문정의 시에는 청유형 어미가 없다. 독자에게 칭얼거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늘 “한잔 마시자”가 아니라 “한잔 할까?”라고 말했다. 친구여, 다음 생에는 부디 착한 남편, 착한 선생, 착한 시인으로 오지 마시게. 큰소리 뻥뻥 치고 거들먹거리고 다리라도 건들건들 흔드는 불량한 건달로 오시게.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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