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1994년 봄, 나는 전라선 기차를 타고 오수역에 내렸다. 버스를 갈아타고 전북 장수군 산서고등학교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해직된 지 4년 반 만의 복직. 산서, 라는 말이 주는 산골짜기의 이미지 때문에 낯섦이 소름처럼 팔뚝에 돋아났다. 면소재지에 보루대가 있었다.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이 지나갔다는 뜻이었다.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었다.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마당 수돗가에서 쌀을 씻고 걸레를 빨아야 하는, 처마가 낮은 집이었다. 이곳에서 몇 년간 푹 썩어야지. 시도 좀 바꾸어야겠어. 그동안 나는 시를 너무 많이 끌고 다녔어. 지긋지긋한 동어반복을 남용했고, 한 편의 시에다 언제나 힘주어 마침표를 찍으려고 욕심을 부렸어. 망원경으로만 세상을 포착하려고 했지. 현미경으로도 세상을 좀 봐야지. 작고 하찮은 것 속에 들어 있는 커다란 걸 찾아야 해. 전교생이 100명 조금 넘는 학교의 국어교사인 나는 수업이 없는 시간에 학교 공터에 텃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틈틈이 들과 산을 쏘다녔다. 그러자 이미 낯익은 것들인데도 새롭게 눈에 띄는 것들이 거기 있었다. 자연이 그랬고 사소한 사람살이가 그랬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시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메모하고 쓴 시들이 나중에 시집 <그리운 여우>가 되었다.
산서는 지금 잘 있을까? 양조장 담벼락에 햇볕은 따뜻할까? 학교 뒤뜰의 모과나무는 꽃을 피웠을까? 그때 가르친 시집간 계집애들도 나처럼 늙어가고 있을까? 비행기재 토끼들은?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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