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초 전봉준은 고부군수 조병갑을 쫓아내는 데 실패했다. 안핵사 이용태에 의해 오히려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과 살육이 진행되자 전봉준은 3월에 손화중을 찾아가 농민군 봉기를 제안했다. 농민군을 편성해 죽창 등으로 무기를 준비하고 군량미를 확보했다. 음력 3월21일, 두 사람이 이끄는 4천여명의 농민군은 고창 무장현 구시내 들판에서 창의문을 발표하고 일제히 혁명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일개 지역 군수를 상대로 한 싸움이 아니라 무능하고 썩어빠진 조정 및 외세와의 대대적인 전투를 선포한 것. 이것이 동학농민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무장기포였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한창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생업에 쓰던 농기구들을 무기로 거머쥐었을까. 무장에서 일어난 농민군은 곧바로 고부를 점령했다 김개남이 이끄는 농민군이 합류하자, 음력 3월25일 백산에 모두 집결, 총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전국으로 띄웠다. 농민군은 막강한 연합군을 완성한 것이다. “우리가 정의를 위하여 여기에 이른 것은 그 본뜻이 결코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백성을 도탄 속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다 두고자 함이다. 안으로는 악질 관리의 목을 베고, 밖으로는 황포한 강적의 무리들을 물리치고자 함이다….” 이렇게 궐기한 농민군들은 파죽지세로 한달 만에 전주성에 입성한다. 2014년 갑오년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해다. 전북 고창에서는 무장기포일인 양력 4월25일을 전후해 각종 기념행사가 열린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