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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줄임말

등록 2014-04-28 18:41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말을 길게 하는 사람은 답답하다. 젊은 사람들일수록 줄임말에 강하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출첵’ ‘난쏘공’ 이런 말들을 쓴다. 국가장학금을 ‘국장’이라고 하는 것도 이해한다. ‘깜놀’이나 ‘지못미’ 정도는 알지만 ‘아싸’를 아웃사이더라고 하는 것은 최근에 알았다. 어떤 동네 축구팀의 모토가 ‘닥공’인데, 닥치고 공격이란다. 우리도 ‘그만둬’를 ‘관둬’로 말하거나 ‘박통’이나 ‘노통’이란 말도 쓰면서 지나왔다. 이제는 ‘야동’이나 ‘레알’ 같은 말은 길게 사용하면 이상한 느낌이 들 정도다. 사랑에 있어서 밀고 당긴다는 말로 ‘밀당’이란 표현에 크게 거부감은 없다.

이렇게 줄임말이 대세를 이루는 시절, 여기서 소설가 김훈의 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 소감 한 부분을 짚고 가자. “키 크고 목 긴 새들이 한쪽 다리로 서서 부리를 죽지 밑에 틀어넣고 한나절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새들의 자태는 혼자서 세상을 감당하는 자의 엄격함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한 새는 작가 자신의 처지를 일컫는 것일 게다. 그러면 그 새는 두루미일까, 백로일까, 왜가리일까?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길게 불러도 품위가 있고 아름다운 말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이십팔점무당벌레’나 ‘검은머리물떼새’나 ‘알락꼬리마도요’ 같은 이름,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을 새, 혹은 도요새라고 한다면 수천 킬로미터를 먼 나라에서부터 깃털이 해지도록 날아온 수고가 잘 느껴지지 않을 터.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천천히, 길게, 조목조목 말해도 좋지 않을까?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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