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헌
화가, 4·16재단 이사장
인간은 많은 것을 기억하며 산다. 동시에 많은 것을 망각하며 살기도 한다.
기억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고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모든 인류에게 공통된 몸의 기억이란 게 있다. 이는 태어나자마자 우리 몸의 감각기관에 부모나 집안을 통해 주입된 기억들이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기억은 어머니의 맛과 냄새를 통해 먼 인류로부터 지금 우리의 몸에 전승된 원초적 기억이다. 이들 원초적 기억이 우리의 삶과 예술을 이끌어 왔다. 아이를 품에 안고 책을 읽어주면 그 아이는 일생을 책과 함께 살게 된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한때 나도 참여했던 ‘북스타트 운동’이나 ‘영재교육’의 원리이기도 하다.
나는 ‘백년의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2004년에 개인전을 연 바 있다. 이 전시회는 그 제목이 뜻하는 대로 일종의 ‘역사화’를 시도한 전시였다. 앞서 1994년에 나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에 맞추어 대규모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전시회’를 조직한 바 있다. 그 당시에 내가 전시를 통해 얻으려고 했던 것은 바로 우금치전투에서 일본의 개입으로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한 후 수많은 동학농민 후예들이 숨죽이고 살아온 비참한 삶에 대한 신원(伸寃)을 이루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의 농업이 피폐일로를 걸어온 것도 이 혁명의 실패로 보는, 일종의 역사적 자각 때문에 시도된 것이었다.
어쨌든 이 전시를 계기로 나는 ‘역사화’에 매달렸다. 그 결실이 ‘백년의 기억’전이었다. 바로 전봉준의 동학농민혁명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금까지의 역사, 즉 우리의 근대화 100년을 거쳐 지금(시청 앞 광장에서 막 촛불시위가 시작된 해)의 ‘나와 우리가 왜 여기에 있나?’를 살펴보는 전시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니까 ‘백년의 기억’전은 100년의 과거를 끌어다 ‘나’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전시회였다.
나는 귄터 그라스가 <나의 세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10년에 한꼭지씩 한편의 작은 이야기(픽션)를 만들어 같이 전시했다. 이것은 과거를 단순하게 재현하는 게 아니라 언어적 구성물(이야기, 서사)로 새로 창조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주위에도 천재적인 기억의 소유자들이 많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중에서도 대단한 기억력의 소유자들이 나타난다. 그런 독특한 기억의 능력자 가운데 감성의 기억(무의지적인 기억)으로 저 유명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는 절대적인 예술적 기억의 소유자다. 그가 기억에 의존하여 쓴 이 소설은 그의 삶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전망한다.
또 우리나라 조선시대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청나라 사신의 일행으로 갔던 일종의 여행 기록이지만 이미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였던 중국 대륙의 실제 모습을 기록(기억)하면서 자신이 속한 조선의 현재의 삶과 미래를 돌아보고 있다. <열하일기>를 번역한 김혈조 교수는 ‘있었던 세계 그리고 있는 세계에 대한 비판과 통찰을 통해 있어야 할 세계를 전망하고 모색한 것’이 <열하일기>의 진정한 주제라고 했다.
이렇게 인류는 항상 과거를 되살려 오늘을 살펴보고 내일을 예견한다. 기억은 이렇게 역사의 수레바퀴처럼 순환성을 가지고 유전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의 순환성은 역사가 지금의 삶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만 작동한다.
특히 대규모 전쟁과 살육에 대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엇갈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가해자는 전쟁으로 그들이 얻은 영화를, 피해자는 쓰라린 상처를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기억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서로 맞닥뜨리기 싫은 과거일 것이다. 이러한 과거를 외면하거나 의도적으로 망각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아직까지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그 주위의 우익들은 철저하게 그들이 일으킨 조선 침략과 그에 따른 많은 범죄 행위를 부인하고 있다. 일본은 주로 전범들의 후예인 지금의 아베 총리처럼 그들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를 침략한 기억을 향수 어린 추억으로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잠시 소환해 보자. 전후 세대인 그는 40대에 중국(내몽골)과 만주 근처의 접경 지역, 노몬한(이 전쟁에서 일본군은 2만명이나 소련군에 몰살당한다)을 방문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일본이라는 밀폐된 조직에서 이름도 없는 소모품(이는 전쟁 중 죽은 300만명의 일본 군인을 지칭한다)으로 아주 운 나쁘게 비합리적으로 죽어갔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는 일본이라는 평화로운 ‘민주국가’에서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받으면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표면을 한 껍질 벗겨 내면 그곳에는 역시 이전과 비슷한 밀폐된 국가 조직이나 이념 같은 것이 면면히 숨 쉬고 있지 않을까?” 그는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일본의 전쟁범죄를 추억(?)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는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것, 즉 현재 상태의 근거가 되는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각성을 꾀한다. 마치 프루스트가 마들렌, 포석의 모퉁이에 걸린 발의 감각에 힘입어 우연히 과거의 이미지들과 만나고 그것을 통해 작가로서의 자기 임무를 각성하게 되었듯이 말이다.
우리 사회는 인재에 속하는 많은 사고를 껴안고 있다. 그중에서도 ‘세월호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세월호 침몰 사고는 그 희생자 유가족만이 아니라 온 사회에 충격을 던진 사건이다. 박근혜 정부가 은폐하려고 노력했던 이 사고의 진실은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이렇게 큰 사고에 대한 집단 기억은 잊히기 쉽다. 그래서 희생자 가족 협의회와 ‘4·16재단’ 등은 매년 돌아오는 4월16일 추모 행사를 ‘기억식’이라는 이름으로 치르고 있다. 비극의 아픈 상처를 잊지 않고 또 한번 미래의 안전사회를 약속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항상 기억과 망각(일종의 치매)의 경계선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예술은 항상 망각의 강을 건너 새로운 기억(창조)을 통해 미래를 만난다. 특히 그림은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는 산수화처럼 과거의 시각적 기억과 사고를 소환해 항상 새로운 미래를 창조한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들은 그들의 사냥감을 내일을 위해 그려서 저장(기억)해 놓은 것이다. 또한 감성혁명인 68학생혁명과 우리의 촛불혁명은 기성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미래로 전진했다. 이는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가 감성적인 상상력을 가지고서 들풀, 돌, 빗물을 불러들여(과거를 호명하여) 세상과 대화하고 춤을 춘 것과 같다.
모든 예술은 가상의 미래(이상세계)를 발현하기 위해 오늘도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