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8 18:34
수정 : 2019.11.29 02:37
고은영 ㅣ 녹색당 미세먼지 기후변화 대책위원장
지난 5월 녹색당 주최의 2020년 총선 준비 대중 강연에 첫 연사로 초대되어,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경험담을 전했다. 세계 곳곳에서 불평등과 싸우며 돌보는 사회를 미션으로 삼는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소식도 전했다. 강연 직후 은빛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 악수를 청해왔다.
“고은영씨, 강연 잘 들었습니다. 저도 늦었지만 도전해보려고요.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색색의 머리칼을 가진 젊은 여성들 100여명 속에서 내내 눈길이 가던 분이었다. 그는 한 지방도시에 살았지만 자식의 자식을 돌보기 위해 수도권에 올라와 지내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 엘리트도, 운동가 출신도 아니고 평범하게 살다가 정치인으로 살고 있는 여성 낙선자의 강연은 그분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내내 생각했다. 이후 그가 총선 인재 발굴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에 응모해 교육을 밟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내내 응원하는 뜻을 표해왔다. 얼마 전 다시 만난 그의 손을 잡고 반드시 출마해주십사, 최선을 다해 돕겠노라고 약속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졸업 단계 교육을 수료하지 못했고 결국 출마하지 못했다. 남편의 지지까지 얻었지만 얼마 전 노령의 어머니가 쓰러져 돌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작게 탄식했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다른 이의 출마 좌절이 무엇이 그리 안타까웠을까. ‘잘살아보세’ 시대에 수출탑을 만든 사람들 뒤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 시대에 제조업 중심 지방도시에서, 국민소득 3만달러라는 지표 뒤에서, 묵묵히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몫을 맡아왔으나 단 한순간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 사람들. 그래도 한번 따지지도 않고 지금도 사회를 돌보는 양육자들. 나는 늙고 지친,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돌보는 운명에 대해 말할 스피커를 기대했다. 아니 사실은, 나는 엄마를 응원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 1950년생, 초졸의 강씨는 오랫동안 구로공단에서 일하며 수출탑을 세웠다. 집에 생활비를 댔고, 남동생은 공고를 나와 삼성전자에 취직했다. 결혼하고 남편의 이름으로 작은 가게를 꾸린 뒤 돈이 아까워 국민연금을 탈퇴했고 경제지표에 잡히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아들 딸을 순서대로 낳았고, 건강하고 똑똑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삼수를 시켰다. 작은 집이 재개발을 겪은 뒤 7억원대 아파트가 됐다. 서울 아파트 평균가가 7억원을 조금 넘는데, 시골에서 상경한 두 베이비부머 인생의 가격표인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지금 손주를 걱정하는 할머니가 됐다.
엄마는 경제지표에 고려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가게를 완벽하게 운영했고 동네 사람들의 모든 기호를 파악하는 장사꾼이자 동네 분쟁의 중재자였다. 오랫동안 시대의 생존 전략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엄마처럼 알파걸이 되어 9년 동안 직장을 다녔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나는 7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명확해졌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우울하기까지 했다. 엄마가 그렇게 살아서 내가 이렇다는, 억울하고 고단한 강박에 시달렸다. 건강한 사내아이를 길러서, 그 아들을 위험한 생산 라인으로 보내 운영되는 제조업을 지탱하고, 그가 결혼하면 그 아이를 돌보며 지속되는 국가. 그 모든 ‘정상 시스템’에 맞춰진 부동산 신화와 사회안전망. 나는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간 이야기다. 더이상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야 엄마가 한 최고의 일, 나를 낳고 기른 일이 보였다. 내 삶은 내가 결정하겠다는 여성 청년들이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가짜 정상 국가를 해체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나는 엄마와 할머니도 정치했으면 한다. 우리를 통해서라도. 근대 시대를 끝장내고, 진짜로 미래를 돌볼 줄 아는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엄마처럼 살지는 않겠지만 엄마가 나에게 물려준 돌봄디엔에이(DNA)에 감사하다고, 전화 한통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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