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2 18:03
수정 : 2019.12.23 02:36
이승욱 ㅣ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장남이나 장녀들이 들으면 강력히 항의할 말이지만, 많은 가정에서 막내들이 그 가족을 지켜내는 역할을 맡는 경우를 흔히 본다. 여기서 ‘지킨다’는 말은 아주 다의적이다. 가족을 지키는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을 챙기고 보살피며 자기 삶도 없이 살아온 적지 않은 장남·장녀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막내와 달리 장남·장녀들은 가족의 자원을 집중해서 지원받기도 하고, 동생들을 돌보는 의무에 포함된 권력과 권한도 함께 누릴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하버드대 강의 내용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그의 명강의를 듣기 위해 강당을 가득 채운 수백명의 학생들에게 샌델 교수는 질문한다. “가족의 자원을 누가 가장 많이 사용할까?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미국, 아니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대 학생 여러분 중에서 장남이나 장녀인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 그러자 적어도 3분의 2 이상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고, 모두들 놀랐다. 미국 사회에서조차 장남·장녀에게 가족 자원이 쏠린다는 증거였다.
물론 장남·장녀들이 가족을 돌보는 책무감이 어떻게 사회적 습성으로 드러나는지 증거도 있다. 몇년 전 필자는 한 광역시의 사회복지사들을 대상으로 어린 시절 가족 내 역할 부담이 개인의 성격과 사회적 공적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했다.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장남·장녀인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더니 250명 정도 되는 수강생 중에서 약 200명이 손을 들었다. 가족 역할에서 비롯된 돌봄의 심리적 습성이 직업적 행위로까지 발전된 하나의 예시였다. 이 두 가지 예시를 일반화하기에는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장남·장녀의 한 특성을 드러내는 데는 충분한 것 같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장남은 가족을 대표해 가문을 계승하고 장녀는 가족을 돌보며 어머니와 동격의 권한을 누리기도 했다.(예전에 많은 아버지들은 아내를 장녀의 이름으로 불렀다.) 책무와 권한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막내들은 가족의 붕괴를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 이미 고착된 가족 갈등의 중력을 감당하면서 부모의 불화를 온몸으로 막아내려고 안간힘을 써온 흔적이 역력했다. 그 방식은 때로는 처절한데, 어머니의 히스테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자신이 히스테리증자가 되거나, 아버지의 폭력성을 이어받아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녀들의 경우도 드물지 않다. 또 장자 승계의 가족 전통이 무너지면서 점점 재미있는 현상이 보이는데, 장남·장녀보다 오히려 막내들이 부모를 모시거나 책임지는 가정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무서운 아버지 무릎에 올라앉아 고기 반찬을 먹을 수 있었던 형제는 막내밖에 없었다는 등의 회상으로 막내에 대한 이미지는 사랑받는 아이라는 환상에 멈춰 있다. 하지만 사실 막내는 가장 늦게 온 가장 약한 존재여서 가장 다치기 쉽고, 그래서 더 다치기 싫어서 많은 막내들은 가족을 지키려 존재를 바친다. 가족의 심리적 불균형이 심각할수록 막내들의 증상도 우심해진다.
그러면 이 사회의 막내들은 누구인가? 성경에서도 물었던 바와 같이, 이 사회에 가장 늦게 온 자들은 누구인가? 김용균, 민식이, 해고 노동자들, 세월호 희생자와 그 가족들, 굶고 있는 아이들, 망명자들, 이름을 다 댈 수 없는 이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 가족 구조와 마찬가지로 사실은 이 사회를 지키는 자들도 그들이다. 그들이 이 세상의 증상을 대변한다. 언젠가 반드시 그들이 스스로 해방을 쟁취하고 정상 사회를 만들어내기를 소망한다.
*그동안 ‘이승욱의 증상과 정상’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