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범 ㅣ 워싱턴 특파원
2020년 미국 대선 후보 결정을 위한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 취재를 위해 지난 1~4일 아이오와주에서 만난 주민들은 자부심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평소에는 미국 내에서조차 주목받을 일 없는 농업 위주의 인구 316만 중서부 주에, 대선이 열리는 4년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다. 유세 현장과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오와 사람들은 피부 색깔 다른 낯선 기자들의 질문에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한결같이 자신이 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자신 있게 설명했고, “우리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결정한다”는 자긍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축제처럼 치러진 아이오와 코커스가 개표 과정에서의 어처구니없는 기술적 문제로 당일 결과를 내놓지 못해 카오스(혼돈)로 바뀌었다. 미 언론은 “아이오와 코커스는 죽었다”는 혹평을 앞다퉈 내놨다. 주자들이 다음 경선지인 뉴햄프셔에서 아이오와 중간집계 결과를 놓고 서로 승리를 주장하거나, “아직 결과가 다 안 나왔다”고 반박하는 풍경이 이어졌다. 민주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한테서 ‘코커스도 관리 못 하면서 국가를 운영하겠다고 하느냐’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 없게 됐다.
하지만 개표 오류보다 더 큰 카오스는 아이오와 코커스의 결과다. 최근 여론조사들을 토대로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초점을 맞춰온 언론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38살 젊은 피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과 진보·개혁을 부르짖는 샌더스가 팽팽하게 1위를 다투는 ‘부티지지 대 샌더스’의 양강 구도로 나온 것이다. 연방 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을 지낸 바이든은 2위는커녕 4위로 주저앉았고, 진보·여성 대통령을 넘보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그 위에 3위로 올라섰다. 아이오와 민주당원들은 오랜 정치 경험과 중도적 정책, 온화한 성품을 갖춘 바이든보다는, 다소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변화’에 손을 들어줬다.
기성 정치인보다는 ‘아웃사이더’ 쪽에 힘을 실은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를 보면서, 그 직전에 워싱턴에서 만난 한 미국인 기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가 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바이든이 아닐 거라는 점은 장담한다”고 말했다. 바이든이 가진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령과 불안한 토론 능력, 노회한 워싱턴 정치인 이미지 등 때문에 결국 후보로 선택받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아이오와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일부 느낄 수 있었다. 확신과 열정에 찬 샌더스, 부티지지, 워런 지지자들에 비해, 바이든 유세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바이든과 ○○○ 사이에서 고민 중”이라는 이들이 많았다. 한 50대 남성은 “바이든을 지지하지만, 트럼프한테는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시작했을 뿐이지만, 아이오와 경선 결과는 바이든이라는 안정적 선택지에 안주해온 민주당 주류에게는 몹시 당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도전자들이 특정인의 대세론을 흔들며 경선판에 지각변동을 일으킨다면 오히려 민주당으로서는 반겨야 할 일이다. 민주당은 ‘워싱턴 기득권 정치인’보다는 참신한 이미지의 인물을 후보로 내세워 대선에 성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1992년 빌 클린턴이나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대표적이다. 2016년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어 대통령까지 당선된 것을 봐도, 워싱턴 정치에 대한 저변의 거부감과 변화 갈망은 여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이 경선 초반의 카오스를 흥행 드라마로 만들어 11월 본선 승리의 에너지로 승화시켜나갈 수 있을지, 미 대선이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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