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전쟁 중에도 생명은 태어나고 투옥과 망명 중에도 작가들은 쓰기를 멈춘 적이 없지 않은가. 예술은 고난과 불행과 비극 속에서 더 찬란히 피어나는 것 또한 수없이 보아왔다. 그날 밤 그 작가들은 지금 어떤 형태로 살고 있을까. 분명한 한가지는 맹렬하게 쓰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고통의 끝에/ 문이 있어요/…”
금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 루이즈 글릭의 시구다. 유난히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시대 탓인지 모르겠다. 짧은 시구 하나에도 의미를 더 부여하고 자꾸 새겨보게 된다.
고통의 끝에 있다는 그 문은 어떤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 문일까.
정확하고 섬세한 언어, 쉽지만 내공이 깊은 그녀의 시는 노벨상 수상 이전부터 눈 밝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일찍이 미국의 퓰리처상과 내셔널 북 어워드 수상 시인이며 계관시인이기도 했던 그녀가 아닌가.
“모든 시 속에는 방아쇠가 있다.” “밤은 책이다.” 그녀의 시 세계를 탐색하다가 비망록에 받아 적어둔 이런 시구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금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날, 나는 예년과는 사뭇 다른 감정에 사로잡혔다. 수상자에 대한 관심이나 유럽 남성 작가, 그중에도 소설가에게 돌아가곤 했던 노벨상의 경향, 또는 금년에도 한국문학을 멀리 비켜 간 거리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스크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모든 시간은 새것이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했는가.
역병이 돌기 시작한 이후, 그 눈부신 시간의 입에다 마스크를 씌우고 숨을 할딱이며 겨우 목숨을 살아내기에만 급급한 것은 아니었을까.
바로 어제처럼 느껴지는 지난 가을밤, 노벨 문학상 발표가 있던 그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리는 종로 북촌의 한 한옥 마당에서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한 세계의 여러 작가들과 저녁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가을밤은 청명했고 기와지붕은 우아한 곡선을 드러냈다. 거문고 연주가 퍼져나갈 때 우리는 언어는 다르지만 문학에 대한 경의와 사랑으로 술잔을 부딪쳤다.
밤이 깊어질 즈음 방금 스웨덴 한림원에서 뉴스가 나왔다며 누군가 노벨 문학상 소식을 알렸다. 독일어권의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와 폴란드 여성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라는 이름이 튀어나올 때 순간 좌중이 조금 술렁였다.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자인 니콜라 마티외, 아티크 라히미, 미국 퓰리처상 수상 시인 포리스트 갠더, 나이지리아 최고 공로 훈장을 받은 아프리카의 니이 오순다레, 중국, 일본, 쿠바, 인도, 헝가리, 베트남, 아랍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호기심이 한데 모아지는 순간이었다. 기실 이 작가들 중에 누가 노벨상을 받더라도 손색이 없는 거장들이었다.
수상자로 호명된 페터 한트케는 유고 내전 때 인종 청소를 저지른 독재자 밀로셰비치에게 동조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그는 노벨상 자격이 없다고 날카로운 비판의 말을 쏟는 작가도 있었다. 또한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였지만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칠레의 피노체트와 악수를 한 일화가 낙인처럼 남아 끝내 노벨상으로부터 외면을 당한 보르헤스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문학과 정의, 준엄한 인류애 같은 것에 대한 공감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문학의 길에 굳이 유명한 상 같은 것은 없어도 크게 슬플 것은 없다. 문학은 훈장이나 수상 같은 것에 성패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오직 정해진 실패를 향해 자기의 길을 만들어가는 기쁘고도 슬픈 존재라는 생각도 거듭 해보았다.
내가 만드는 나의 길! 내 문학!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나의 피 속에는 코리아의 햇살과 바람이 들어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예술가들의 고통과 상처가 함께 흐르고 있어요. 이제 여러분의 피 속에 한국의 가을 흙내음과 한국인들이 걸어온 깊고 뜨거운 숨결이 함께 스밀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괜히 흥분하여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모두 화기애애하게 서울의 가을밤을 즐겼다.
그때만 해도 얼마 안 가 뜻하지 않은 역병이 지구를 덮쳐 이렇듯 지극히 제한된 자유를 살아야 하는 고통과 고립의 시간이 오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참혹한 전쟁 중에도 생명은 태어나고 투옥과 망명 중에도 작가들은 쓰기를 멈춘 적이 없지 않은가. 예술은 고난과 불행과 비극 속에서 더 찬란히 피어나는 것 또한 수없이 보아왔다.
그날 밤 그 작가들은 지금 어떤 형태로 살고 있을까. 분명한 한가지는 맹렬하게 쓰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과다한 정보와 인터넷과 속도에 빼앗긴 시간 대신 귀중한 고독을 되돌려받았다는 듯이 치열하게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여러 계획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어 멍하기도 했지만 내 골방의 작업은 멈춘 적이 없다.
미국 어느 서점 초청이 연기된 것을 시작으로, 베를린 국제 작가 초대, 우크라이나 오데사대학의 특강도 디지털 비대면으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크게 아쉽거나 섭섭할 것은 없었다. 그것이 문학의 본질이 아닐뿐더러 필요하다면 다른 방식과 경로를 통하여 더 넓게 다양하게 공유될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서 명분 있는 무대에 서는 경험도 좋지만 새로운 형태의 만남이 더 신기하고 뜨거울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 덕분에 유관순 열사 서거 100주년을 맞아 지난 3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힘내라 대한민국’ 무관객 공연 1호로 장시 <아우내의 새>를 낭송했던 기억은 생애에 다시없는 경험이었다. 이어서 10월 중순에 유관순 열사가 옥사한 서대문형무소에서 금난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음악과 시의 밤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감격이었다. 그 시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20대의 젊은 시인이었던 내가 희끗한 머리카락을 날리며 그 공간에서 시를 읽을 수 있다니… 소녀의 100주기와 함께 시간의 오묘함이 밀려와 자꾸 목젖이 떨리었다.
엄혹한 군사 정권 아래 진실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시인으로서의 비겁함이 부끄러워 이 시를 썼다. 민족, 애국심 같은 말을 시어로 쓰는 것이 아직도 서툴고 두렵지만 정의와 자유혼과 표현의 문제를 고민했던 젊은 시절이 있어 참 다행이다.
“풀꽃 하나가/ 쓰러지는 세상을 붙들 수 있다.// 조그만 솜털 손목으로/ 어둠에 잠기는 나라를/ 아주 잠시/ 아니, 아주 영원히/ 건져 올릴 수 있다//…” 장시 중 서시는 지금 유관순의 모교 이화여고 교정에 새겨져 있기도 하다.
가을비가 한두번 지나가면 새로운 시간이 어김없이 솟구치리라.
문정희 ㅣ 시인·동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