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기억은 그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021년, 그리고 2022년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4·19 혁명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썼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4·19 혁명 앞에 ‘미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군인들은 ‘혁명’을 일으켰다고 했지만, 한일협정 추진 과정과 3선 개헌을 통해 ‘혁명’의 수식어를 스스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박태균 ㅣ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우주시대가 열린다’, ‘인간이 자연지배를 이룩한다’, ‘고속승용차의 무인조정이 시작된다’, ‘태양계의 여러 위성을 탐험한다’, ‘음속 3배의 여객기가 11시간 만에 세계를 일주할 것이다’. 마치 21세기를 여는 신문에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가 1960년 1월1일치 한 신문에 실렸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1960년대의 세계는 이렇게 변할 것이며, 그 결론은 ‘살기 좋아진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매 10년이 시작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간 일어날 일들을 예상하곤 했다. 2020년의 시작도 그랬다. 앞으로 10년간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하루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 2020년대는 희망이 가득 찬 10년이었다. 그리고 2020년은 또 다른 의미에서도 중요한 해였다.
올해는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발발 후 70년이 되는 해, 4·19 혁명 60주년, 광주항쟁 40주년이 되는 해였다. 1970년에는 한국 산업화의 상징 중 하나인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었지만, 동시에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한 전태일의 외침이 있었으며, 부실공사의 대명사인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이 있었다. 1990년에는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의 정치지형을 탄생시킨 3당 합당이 있었고, 2000년에는 6·15 선언이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이 두차례나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은 2010년에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이 있었다.
2020년에는 기억해야 할 사건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러한 사건들을 통해서 현재 우리의 상태를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했다. 그러나 그 한 해를 코로나19 팬데믹이 다 삼켜버렸다. 너무나 아쉽고, 너무나 안타깝고, 그럼에도 팬데믹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현재와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2021년을 맞게 되었다.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아직 그 효과와 부작용은 불확실한 채 백신 확보를 위한 자국이기주의 속에서 세계질서가 표류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몇십년이 지난 후 2020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전세계가 멈춘 한 해로 기록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2020년은 성장과 효율, 그리고 개발만 추구하던 인류가 안전과 생명에 눈을 돌리고,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녹색혁명이 시작된 해였다. 코로나19로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동시에 과거부터 계속되어오던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20년은 한국 사회의 혁신적 성장이 시작된 해이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몇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조, 그리고 의료진과 국민들의 자발적 공조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21세기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2050년 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에 2020년을 이렇게 기록할 수 있을까?
한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시민들 중에 코로나19로 인하여 힘들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인간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인 서로가 만나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기쁨을 빼앗아 갔다. 코로나19는 2020년 초 세웠던 새해 계획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 역사가 그랬듯이 이 어려움 속에서도 인류는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지난 1년간 보아왔다.
이를 위해서 2020년 이후가 더욱 중요하다. 2020년의 기억은 그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021년, 그리고 2022년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4·19 혁명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썼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4·19 혁명 앞에 ‘미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5·16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은 ‘혁명’을 일으켰다고 했지만, 1964년의 한일협정 추진 과정과 1969년 3선 개헌을 통해 ‘혁명’의 수식어를 스스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1961년을 열면서 4·19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인간은 객관적인 제 조건을 소재로 하여 값있는 역사를 창조해야 한다’고 했던 한 학자의 일갈을 기억해야 한다. 30년 후 2020년의 대한민국 역사를 쓰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한 해’ 앞에 ‘미완의’ 또는 ‘실패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기를 절실히 바란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