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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태균 칼럼] 한국과 일본, 미래에 관한 과거사

등록 2021-03-09 14:19수정 2021-03-10 02:43

과거사 문제의 핵심은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의 용서, 화해에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과거의 문제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공통된 인식을 가져야만 한다. 공통의 인식이 목적이지, 배상이 목적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면 돈으로 배상만 하면 되는 것인가?

박태균 ㅣ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과거사가 미래를 위한 양국의 협력을 가로막아서는 안 되며, 과거의 문제와 현안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가?

미래를 위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가이다. 지금까지 한일관계에서 나타났던 과거사 문제의 해결 방식은 그 해결을 뒤로 미루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안과 과거사를 서로 연계함으로써 무리하게 해결하고자 하다가 문제가 되었다.

1965년의 한일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한국 정부는 경제성장 정책을 급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그리고 미국은 안보 문제의 해결과 한국에 대한 원조의 부담을 일본에 돌리기 위해 한일관계 정상화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은 한일협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양국은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인식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특히 중요한 문제는 1945년 이전의 협정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와 관련되는 것이었다. 1905년과 1910년의 을사늑약과 강제합방조약이 조약 당시로부터 무효라는 한국과, 1945년 패망 이후에 가서야 무효라는 일본의 입장이 서로 대립했고, 양국 대표는 각자의 국가에서 자기들의 입장대로 발표하기로 꼼수를 썼다. 일본 정부는 협정을 통해 개인 배상까지 다 했다고 하지만,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가 합법적이었다고 하면서 배상을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모순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배상금이 아닌 청구권 자금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용어가 사용된 것 아니었는가? 당시의 꼼수는 지금까지 양국 간 과거사 문제 해결에 발목을 잡고 있다.

2015년의 위안부 합의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중국의 부상과 북핵 문제로 인하여 미국 정부는 한-일 간의 긴밀한 협력을 원했고, 이를 위해 양국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배상을 하기 위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양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합의 이전은 물론 그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일본 정부나 군대가 직접 개입하지 않은,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면서 책임이 없음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학의 한 교수가 쓴 글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 합의를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과거사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한일관계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과거사 문제의 핵심은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의 용서, 화해에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과거의 문제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공통된 인식을 가져야만 한다. 공통의 인식이 목적이지, 배상이 목적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면 돈으로 배상만 하면 되는 것인가?

문제는 이렇게 과거사 인식의 합의가 없음에도 과거사 문제를 현안 해결의 조건으로 내세운다면, 앞으로 한일관계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에서 역사 문제의 해결 없이는 현안에 대한 협의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세웠기에 2015년 갑자기 위안부 합의를 하면서 ‘불가역적’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수식어를 붙이는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었을까?

양국 정부는 솔직해져야 한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과 일본 사회가 서로 인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당장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하면서 동시에 양국 사회 간 인식의 공유를 통해 불행했던 과거가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양국 정부가 노력한다고 약속을 하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가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주제와 그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 그 주제와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하여 양국의 교과서에 내용을 적시함으로써 양국 사회의 공감대를 갖도록 한다는 선언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하여 한국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우리 스스로의 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영국의 한 노동당 의원이 언급했던 바와 같이 베트남전쟁과 같이 과거 한국이 개입되어 있었던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 이는 국가의 동원에 의해 가해자가 된 참전군인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내로남불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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