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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유레카] 조국, 그리고 기계적 유물론

등록 2019-09-10 17:30수정 2019-09-10 19:23

지난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기자간담회에서 ‘기계적 유물론’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조 후보자는 “금수저이고 강남에 살아도 우리 사회가 좀 더 좋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좀 더 공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나는 기계적 유물론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계적 유물론이라고 하면, 보통 마르크스가 주창한 ‘변증법적 유물론’에 미치지 못하는 ‘속류 유물론’을 가리킨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유물론도 잘못 이해하면 기계적 유물론으로 오해될 소지가 없지 않다. 가령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명제가 그런 경우다. 이 명제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처지가 그 개인의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말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여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며 의식은 존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이해하면 마르크스의 말을 곡해하는 것이 된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존재가 우선함을 주장하면서도 의식과 존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마르크스 자신의 삶이 ‘의식과 존재의 변증법’을 증언한다. 마르크스는 부유한 교양 부르주아 집안 출신으로 베를린대학을 나온 철학 박사였지만, 평생 사회혁명의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살았다. 마르크스의 혁명 동지 엥겔스는 더 극단적이다. 엥겔스는 방적공장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산업 부르주아의 삶을 떠난 적이 없다. 엥겔스도 마르크스도 ‘금수저’ 출신이었다. 특히 마르크스는 런던 망명 시절에도 하녀를 두고 사는 부르주아의 삶을 포기하지 못했고, 세 딸에게 모두 부르주아 교양 교육을 시켰다. 부족한 돈은 엥겔스의 금고에서 나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예를 보면, ‘강남 좌파’라는 말도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다. 다만 그 경우엔 존재와 의식의 괴리로 인한 ‘위선’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위선은 개인 내면의 초자아를 자극해 도덕적 의식의 발동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의식의 발동이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조국 장관이 내면의 도덕적 요청에 응답해 ‘개혁’에 매진한다면, 박탈감을 느낀 많은 사람들에게 늦게나마 빚을 갚는 일이 될 것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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