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질본) 산하의 국립보건연구원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지난 3일 행정안전부가 질본의 ‘질병관리청’ 승격과 함께 국립보건연구원을 질본에서 떼내는 방안을 내놓자, 감염병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무늬만 승격”이라고 비판했다. 감염병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기능을 배제한 청 승격은 질본을 감염병 대응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검역과 역학조사 등 뒷수습만 하는 기관으로 축소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알맹이 빠진 승격인 것이다. 이는 질본을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와도 어긋난다. 문 대통령이 5일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이유다.
복지부는 감염병뿐 아니라 보건의료 전반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관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방역과 연구 기능을 분리해야 바이오헬스산업 기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복지부의 설명을 보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질본을 개편하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조직 개편 논의 과정에서 부처 이기주의가 작동한 건 아닌지 의심마저 된다.
이재갑 한림대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4일 ‘질병관리청 승격, 제대로 해주셔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보건복지부에 감염병 전문가가 얼마나 있기에 보건연구원과 감염병연구소를 운영한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정은경 질본 본부장은 4일 브리핑에서 “질병관리청 안에도 역학조사나 감염병 예방·퇴치 관련 정책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조직과 인력이 확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정 본부장과 감염병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격 수용한 것이다.
질본을 승격시키는 기본 취지는 앞으로 더 잦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신종 감염병 발생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세우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가 필수적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 대신 행정관료가 상황을 컨트롤해 상황이 악화된 반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선 질본을 중심으로 통합적인 대응이 이뤄져 방역에 성공한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감염병 연구 기능 소관 문제뿐 아니라 조직 개편안 발표 이후 제기된 여러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펴 제대로 된 개편안을 내놓기를 바란다. 그리고 개편의 목표가 국민 건강과 생명 보호라는 점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