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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화재 참변’ 당한 형제, 보호조처 제때 내렸더라면

등록 2020-09-18 18:38수정 2020-09-19 02:38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이 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컵라면 용기가 17일 물웅덩이에 떠 있다. 인천/연합뉴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이 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컵라면 용기가 17일 물웅덩이에 떠 있다. 인천/연합뉴스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끼니를 때우려다 불이 나 중태에 빠진 사고가, 아동학대를 제때 막지 못한 데 따른 ‘예고된 비극’인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한다. 인천미추홀경찰서 조사 결과 등을 보면,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한 뒤 우울증을 앓아온 엄마는 2년 넘게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채 방치했다고 한다. 불이 난 당시에도 엄마는 전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아이들이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 사실을 알게 된 이웃들은 2018년부터 여러 차례 인천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고 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2년 가까운 관리에도 양육 환경이 개선되지 않은데다 아이들의 상태가 악화되자 지난 5월 인천가정법원에 ‘피해아동 보호명령’을 청구했다. 아이들을 엄마로부터 격리해 보호시설에 위탁하도록 조처를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격리 대신 상담·위탁 처분을 내렸다. 만약 아이들이 이때 안전한 환경으로 옮겨졌으면 참변을 피했을지도 모른다. 착잡한 심정을 누를 길이 없다.

피해아동 보호명령제는 법원이 피해아동의 격리나 시설 위탁, 친권 행사 제한 등을 결정하는 제도인데, 절차적 어려움 등으로 실제 격리 처분이 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상담 처분은 강제성이 약해 부모가 이행을 하지 않아도 과태료 이외의 조처를 할 수 없다. 일선 보호기관은 이런 상담 거부가 40%에 이른다고 한다. 상담을 거부한 부모가 아이들을 다시 학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형제들의 엄마가 지역사회의 보육지원을 거부한 데는 우울증 등 심리적 이유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아동학대는 단순히 가해-피해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가 결부돼 있다. 피해 아동뿐 아니라 가해 부모의 상태까지 면밀히 살펴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며 돌봄 없이 방치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형제들도 지속적인 방임 학대 속에서, 코로나 사태로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끼니를 챙기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경제위기로 인한 저소득층 가정의 고통은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다. 이번 화재 사고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걸 막으려면 복지당국과 지역사회의 더 적극적이고 빈틈없는 대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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