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들, 길을 잃다
역대최다 188명…꿈도 컸고 ‘인기 짱’이었는데
3년 지난 요즘 선배들과 다른게 뭐더라???
3년 지난 요즘 선배들과 다른게 뭐더라???
2004년 4월15일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에 발을 디딘 초선 의원들의 임기가 꼭 1년 남았다. 지난 3년간의 여의도 생활에서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우상호 열린우리당 의원은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 우현(영화배우)씨로부터 “형, 그러면 안돼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짧은 문장이 가슴을 후벼팠다. 2005년 12월 이라크 파병 동의안 처리에 반대하는 같은 당 의원들을 말리느라 정신 없이 뛰어다닐 때였다.
“반대를 선도해야 마땅한데, 당시 당 의장 비서실장을 맡고 있어서 오히려 반대 의원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우 의원은 “여당 의원으로 신분이 바뀌어서 그런가 싶어 너무 괴로웠다. 차마 찬성은 못하고 기권했는데, 집에 가서 아내한테도 (반대 안했다고) 혼났다”고 말했다.
3년 전 4·15 총선에서 당선돼 이제 막 ‘4년차’에 접어든 17대 국회 초선 의원들은 요즘 부쩍 후회가 많다. 역대 최다(188명, 63%)로 국회에 입성하면서 어느 때보다 개혁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정작 이뤄놓은 것을 손꼽기 어렵다.
이성권 한나라당 의원은 17대 국회를 “용두사미 국회”라고 표현했다. 지난 3년 동안 이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도 별 수 없더라”=이성권 의원은 2004년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를 막기 위해 법사위 회의실에서 10여일 동안 점거 농성을 했다. 당 대표의 결정과 지시에 따랐다고 한다.
출석 점검도 꼬박꼬박 해 빠질 수도 없었다. “학생운동 시절 총장실 점거농성을 했을 때는 선배들과 끊임없이 토론했다. 그러나 법사위 농성을 하면서, 아무런 토론도 없었다. 이게 정말 바람직한 것인가 씁쓸하기만 했다.”
초선 의원들은 정당이 편을 나눠 싸울 때 ‘조직원’으로서 휩쓸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당 내부 개혁의 필요성을 외치던 초선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줄서기 행태로 바뀌었다.
노웅래 통합신당모임 의원은 4·15 총선 3주년날 일기를 썼다. “주말도 없이 바빴는데, 애초 생각보다 50% 밖에 못한 것 같다. 시끄러운 우리들만의 정치를 한 것은 아닐까…” 노 의원은 “실제로 해보니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적더라. 특히 초선들은 선명성을 드러내려 애썼고, 중진들은 초선들에 치여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개혁에 따르는 저항을 막지 못하고 묵사발이 됐다”고 말했다. 어느덧 욕하던 ‘선배’들의 모습을 따라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한다.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다른 당 의원이랑 소리지르고 싸운 뒤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한 나를 보면 ‘아, 나도 젖어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진 자들의 스포츠라고 생각해 안 치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골프채를 잡게 되더라”(이성권 의원), “협회 행사에 참여하러 호텔에 갔는데 안내원이 없어 당황한 적이 있다. 대접받는 데 익숙해진 내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우상호 의원)는 고백도 마찬가지다. 이상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해외 출장 때 개인 여행을 다니는 초선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애초 가졌던 사명감과 긴장감을 잃고 있는 것이다.
“남은 1년이 더 걱정”= 자랑할 만한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구내 식당서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곤 한다. 권위주의는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의원들을 ‘불안 조성파’라고 표현했다. “공부 안하는 의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국회 안에서 토론회·공청회를 열 수 있는 4곳의 일정이 늘 꽉 차 있는 것도 예전과 달라진 점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이런 성과만으로 자신들을 얼마나 인정해줄지는 장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남은 임기 1년도 대선에 휩쓸려 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진수희 의원은 “벌써 국회가 파장이 돼 버린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선병렬 열린우리당 의원도 “남은 1년 동안 대선과 범여권 통합 등으로 국회가 잘 마무리되기 어려운 형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초선들은 내년 총선에서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재원 한나라당 의원은 “국민들은 언제든 지지를 철회할 생각을 갖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아니냐”며 “초선들의 생존율이 50%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조혜정 기자 jieuny@hani.co.kr
우상호
이성권
초선 의원들은 정당이 편을 나눠 싸울 때 ‘조직원’으로서 휩쓸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당 내부 개혁의 필요성을 외치던 초선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줄서기 행태로 바뀌었다.
노웅래
진수희
최순영 / 이계진
김재원
이지은 조혜정 기자 jieuny@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