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때 “동성애 옹호하나”
보수 개신교 대변 총공세
“소수자 인권보호 흐름 역행”
보수 개신교 대변 총공세
“소수자 인권보호 흐름 역행”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이 ‘동성애·동성혼 찬반’ 여부를 사상 검증의 새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그간 지역주의와 색깔론을 지지층 확보의 수단으로 이용했던 보수 정치권이 최근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동성애·동성혼 문제를 내세워 후보자를 공격하고 지지층을 다지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부 보수 기독교계와 손잡은 이런 흐름은 독일 의회에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등의 국제적인 변화와 동떨어질뿐더러,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는 헌법적 가치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군형법의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규정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냈던 것을 ‘동성애 옹호’로 공격해 낙마시킨 자유한국당 등은 다시 ‘동성애 문제’를 재장전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등 국민 법 상식과 어긋나는 김명수 후보자 의식에 심각성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김 후보자는 지난 2012년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성 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발제자들이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김명수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군대 내 동성애를 옹호하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가능성이 높다”며 김 후보자가 ‘부적격 인사’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2~13일 이틀에 걸친 김명수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3일 청문회에서 “성 소수자를 인정하게 되면 동성애뿐 아니라 근친상간 문제나 소아성애, 시체 상간, 수간, 즉 동물 성관계까지 비화가 될 것이다. 인간의 파괴·파탄은 불 보듯 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당 전희경 의원은 청문회 첫날인 지난 12일 “군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김 후보자가 “군형법은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대법원장 후보자로서) 의견을 가진 게 없다”고 원론적인 의견을 내자,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후보자를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김 후보자가 사법부 독립성 등에 대해 비교적 자신의 소신을 차분하게 밝히며 대응하자, 자유한국당이 보수 기독교계 등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동성애 문제를 무기로 삼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후보자에 앞서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도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보수 기독계의 ‘문자 폭탄’을 받은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의 인준 반대에 부닥치는 등 ‘동성애’가 사상·인사 검증의 잣대로 위력을 발휘했다.
김이수 후보자가 지난해 7월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규정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던 것은 동성애 찬반 여부가 아니라 “해당 군형법의 조항이 구체적 기준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의원들은 “김이수 후보자가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보수 기독교계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확산시켜 결국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까지 벌어졌다.
또 일부 보수 기독교계는 헌법의 ‘양성평등’ 조항을 ‘성평등’으로 수정하면 동성혼 합법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국회 개헌특별위원회의 전국 순회 토론회에서도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집단 대응하는 등 ‘동성애 문제’가 정치권을 압박하는 이슈가 되고 있다.
법학자 등 전문가들은 동성애 문제가 보수 정치세력 등과 결탁해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새로운 진영논리로 작동하고, 인권의 가치까지 훼손되는 것에 상당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성애 찬반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 자체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동성애와 동성혼을 반대하고 처벌하고 싶다면, 그건 의원들이 법을 만들어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의회가 만든) 법을 기반으로 판단하는 사법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들이 해결할 문제를 상대에게 묻고 있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수자의 인권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헌재소장과 대법원장 후보자에게 동성애 문제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씌우면서, 소수자의 권리를 압박하는 일을 국회의원들이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동성애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헌법의 이념상 (개인의 선택과 인권이) 제한을 받아선 안 된다. 청문회는 바로 그런 헌법적 가치를 우선시할 수 있겠느냐는 법률가의 양심을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정치인이 인권의 가치와 이념을 선도해야지 일부 기독교계의 주장을 대변하고 사회를 분열시킨다면 그건 정치인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정치인들은 지역구 대형 교회 등이 유권자로서 중요한 만큼 보수 기독교인들이 보내는 ‘문자 폭탄’에 맞서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야권의 한 의원은 “김명수 후보자를 떨어뜨리라는 기독교인들의 문자를 지금도 하루에 300통씩 받는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보수에는 경제보수, 안보보수, 도덕보수 등이 있는데, 도덕보수를 중시하는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이 ‘성적 취향 때문에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진보·개혁 성향 인사들의 생각에 대해 한국 사회 가치관을 통째로 엎으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이에 보수 정치 세력이 동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는 “적대의 대상을 만들어 자기 존재를 확인했던 사람(보수 정치권)들이 이번에는 동성애로 적대의 대상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호진 김규남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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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이 2015년 6월26일 동성결혼이 헌법적 기본권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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