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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수락여부 ‘말흐린 김종인’…‘밀당 정치’ 이번에도 통할까?

등록 2020-04-29 13:07수정 2020-04-29 14:53

4개월 임기 비대위원장 수락 놓고 ‘수싸움’

“위원장 추대로 여기지 않는다” 거절한 뒤,
“내가 한 소리도 아닌데” 짐짓 발 빼는 모습

2011년 새누리당, 2016년 민주당 때 기시감
대선까지 2년 남아 정치적 입지는 달라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지난 16일 오전 국회에서 4·15 총선 패배에 대해 입장을 밝힌 뒤 퇴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지난 16일 오전 국회에서 4·15 총선 패배에 대해 입장을 밝힌 뒤 퇴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종인 미래통합당 전 총괄선대위원장의 ‘밀당 정치’는 이번에도 통할 것인가? 4·15 총선에서 참패를 당한 통합당 내부가 ‘김종인 비대위론’와 ‘자강론’으로 양분돼 힘겨루기를 이어가는 와중에, 김 전 위원장은 29일 가부를 또렷이 밝히지 않은 묘한 화법을 이어가며 당 지도부의 애를 태우고 있다.

전날 통합당 상임전국위원회 정족수 미달 및 전국위 가결로 성립된 ‘4개월짜리 비대위원장’ 제안에 대한 김 전 위원장의 응답이 초미의 관심사다. 김 전 위원장은 당초 “2022년으로 예정된 대선을 치를 수 있는 상황이 될 때까지 전권을 쥐어야 한다”며 ‘무기한 전권’ 비대위원장을 시사해 왔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반쪽짜리 제안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전날 오후 4시30분께 통합당 전국위 가결 소식이 전해진 뒤 김 전 위원장의 뜻을 대변해온 최명길 전 의원은 언론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김 전 위원장은 오늘 통합당 전국위에서 이뤄진 결정을 비대위원장 추대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통합당의 비대위원장 제안에 대해 즉각 거부의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미래통합당 전국위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택으로 귀가한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오른쪽)이 자신을 기다리던 심재철 대표 권한대행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전국위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택으로 귀가한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오른쪽)이 자신을 기다리던 심재철 대표 권한대행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전국위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택으로 귀가한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오른쪽)이 자신을 기다리던 심재철 대표 권한대행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전국위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택으로 귀가한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오른쪽)이 자신을 기다리던 심재철 대표 권한대행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이 직접 언론과 만나면서는 그 의미가 모호해졌다. 그는 28일 밤 종로구 자택 앞에서 기자들을 만나 “난 여태 아무 말도 안했다. 나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문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심재철 통합당 대표 권한대행과 김재원 정책위의장을 집 안으로 들여 30분간 대화를 나눴다. 김 전 위원장은 이어 29일 아침에도 전날 최 전 의원의 문자 메시지에 대해 “그거 내가 한 소리도 아닌데, 그런 이야기를 내가 (한 적이 없다)”고만 말했다. 대리인을 통한 메시지를 흐려 정치적 해석의 여지만 극대화한 셈이다. 대안 부재로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거부하기 힘든 통합당에게 더 나은 카드를 제시하라고 공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런 방식의 밀당 정치의 최고수로 불린다. 그는 2011년 한나라당(통합당의 전신) ‘박근혜 비대위’ 시절부터 위기에 놓인 정당을 찾아 중도로 외연을 넓히는 해결사 역할을 맡아왔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 패배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사퇴 등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의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경제 민주화를 전면에 내걸었다. 당시 “사회주의를 하려는 것이냐”는 당내 반발에 부딪히자, 김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 사퇴 카드를 내밀며 돌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 뒤 새누리당과 결별한 그는 2016년 더불어민주당으로 파트너를 바꿨다. 그때도 더불어민주당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비문 세력이 당을 나가고 야권 분열로 총선 전멸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당시 당 대표)은 김 전 위원장의 종로구 자택을 찾아 그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했다. 이후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배치하는 ‘셀프 공천’ 논란 등으로 위기에 몰리자 김 전 위원장은 당무 거부로 또 다시 ‘밀당’을 시도했다. 문 대통령의 간곡한 만류로 당에 남아 총선을 진두지휘한 김 전 위원장은 그해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1당으로 이끌었다.

통합당 비대위원장 자리를 놓고 보이는 김 전 위원장의 태도는 그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거절(사퇴)의 의사를 밝힌 뒤, 짐짓 여지를 남겨 마지못해 수락하는 수순이다. 문제는 지금이 4·15 총선 직후라는 점이다. 중도 쪽으로 외연 확장을 끌어낸다는 김 전 위원장의 독보적인 정치적 역량은 피 말리는 선거 국면에서 대단한 협상력을 발휘해 왔지만, 차기 대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당장 2년 뒤 대선보다 눈앞의 당권에 관심이 많은 통합당 중진들이 ‘김종인 비대위’의 강력한 비토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이런 정치공학적 배경을 입증하고 있다.

통합당의 한 당선인은 “김 전 위원장의 역량과 비전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당 안팎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다. 꼭 김 전 위원장만 바라보고만 있을 이유도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꼭 김 전 위원장만이 아니라도, 아직 전열을 다듬을 시간이 있다는 점을 통합당 내부에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조경태 미래통합당 최고위원(가운데)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이날 전국위원회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임명안을 가결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조경태 미래통합당 최고위원(가운데)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이날 전국위원회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임명안을 가결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물론 김종인 비대위가 성립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김 전 위원장을 제외하곤 당을 이끌 구심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현실론 때문이다. 심재철 권한대행 등 통합당 지도부가 전날 밤 그의 집 앞에서 30분을 기다려 영입을 시도하는 등 모양새도 갖췄다. 김 전 위원장으로서는 우선 4개월짜리 비대위를 구성한 뒤 차후에 임기 규정을 손보는 ‘개문발차’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심재철 권한대행은 전날 전국위 가결 뒤 “당헌상 대표 임기는 8월 말까지로 돼 있는데 이는 당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것을 전제로 임기를 잡은 것”이라며 “앞으로 당헌 개정은 새 비대위원장이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한동안은 비대위원장의 임기와 권한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지 방법론을 모색하는 기간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전날 밤 김 전 위원장의 집에서 ‘포도주 회동’을 마친 김재원 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8월31일 전당대회까지만 비대위를 맡아달라고는 우리로서도 제안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대위 체제는 당대표 권한대행이 전국위원회의 추인을 받아 임명해야 출범하는데, 최고위를 열어 의논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당은 이날 오후 3시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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