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0일 낮 청와대 본관 현관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을 영접, 악수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계개편 민감한 시기…왜?
청 “김대중도서관 축하방문”
청 “김대중도서관 축하방문”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찾은 것을 두고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재통합을 비롯한 정계개편 논의가 봇물을 이루는 민감한 시점에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장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서는 이번 만남이 신당 창당론에 힘을 보태리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온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정치적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4일 오전 11시 부인 권양숙씨와 함께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찾아, 전날 개관한 김대중전시실을 관람한 뒤 바로 옆 김 전 대통령 자택에서 김 전 대통령 내외와 2시간 동안 점심을 같이 했다. 이 자리엔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노 대통령은 왜 민감한 시기에 전직 대통령의 자택을 찾았을까.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김대중도서관 전시실 개관을 축하하기 위한 방문이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2003년 11월3일 김대중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하는 등 김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항상 관심을 가졌다. 또 (이번 만남이) 부부 동반 형식이어서 민감한 정치 현안이 나올 분위기도 아니었다”는 게 윤 대변인 설명이다. 남북 관계와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해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았을 뿐 정치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만남이 노 대통령의 결심으로 성사됐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도 신당 창당 논란이 거센 상황에서 정계개편에 대한 잘못된 메시지를 줄까봐 김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적지 않게 고심했다. 하지만 도서관 전시실 개관식에 가는 것인데 어떻겠느냐며 최종 결심을 굳혔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내친김에 김 전 대통령 쪽에 “오찬을 함께 하는 게 어떻겠냐”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청와대의 다른 핵심인사는 “노 대통령의 방문은 최근 북한 핵실험 이후 김 전 대통령이 보여준 노력에 대한 감사의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북 핵실험 이후 김 전 대통령이 ‘미국 책임론’을 제기하며 평화적 해결 원칙을 역설함으로써 노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넓혀줬다는 얘기다.
정치 얘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두 사람의 만남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여권의 정계개편 문제에서 두 사람의 지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 만남은 더욱 눈길을 끈다. 김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분당이 잘못이란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과의 재통합은 ‘지역주의 회귀’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은 “두 분의 정치 지향이 달라 각각 지지세력에 주는 메시지에 공통 분모가 없지만, 대북 포용정책에 찬성하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효과는 있다”고 말했다.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만남 자체가 메시지가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이미 정치적 행위”라는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의 지적은 이런 점에서 일리가 있다. 신승근 이지은 기자 skshin@hani.co.kr
5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 도서관 전자방명록에 전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작성한 글귀가 남겨져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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