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헌따라 합법적으로…직윤리 실종부터 바로잡아야”
노무현 대통령은 4일 최근 열린우리당내 통합신당 창당 논란과 관련, "열린우리당의 진로와 방향은 그 형태가 어떠하든 정책과 노선을 어떻게 변화, 발전시킬 것인지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며 "또한 그동안 우리당이 보여준 지도력의 훼손과 조직윤리의 실종을 바로 잡는 노력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브리핑에 `우리 모두의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열린우리당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이 문제는 당 지도부나 대통령 후보 희망자, 의원 여러분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며 "당헌에 명시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통적이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게 정당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저도 당원으로서 당의 진로와 방향, 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노선에 대해 당 지도부 및 당원들과 책임있게 토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중인 노 대통령은 지난 3일 출국에 앞서 이 글을 작성했고, 이 글을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노 대통령은 당내 통합신당 추진 논의와 관련, "저는 우리당의 정책적, 역사적, 법적 정체성을 유지.변화.발전시켜서 국민 속에 뿌리내리는 논의를 반대하지 않으며, 그러한 논의는 어떤 가치와 정체성을 지향하는지, 이에 참여하는 새로운 세력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그렇지만 이른바 `통합신당'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리고 어떤 세력이 새롭게 참여하는지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민주당이나 특정 인물이 통합의 대상으로 거론될 뿐이며, 결국 구(舊)민주당으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지역주의를 극복하고자 기득권을 포기하고 결단했던 우리당이 다시 지역구도에 기대려 한다면, 이는 역사와 국민과 당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등을 통해 완화되고 있는 지역구도가 내년 대선과 맞물려 다시 강화되고 고착화될 것이란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물론 정당은 선거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도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하며,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어려운 때 일수록 당의 정체성은 더욱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차별화'와 '탈당'은 해답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 뒤 "당적 문제를 이야기한 것은 임기 말에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 전략과 탈당 압박 속에서 마침내 당적을 포기한 역대 세 분 대통령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내놓은 것"이라며 "그런데 언론에 탈당이 기정사실로, 나아가 당정 결별로 보도되어 해명을 했지만 이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대의를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지금 열린우리당이 처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특히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높지 않아 매우 송구스런 마음을 갖고 있다"며 "그렇지만 대통령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창당 이후 지난 3년여 동안 아홉 차례나 당 지도부가 바뀌었고, 지도부가 제대로 일을 해보지도 못하고 각종 선거 패배 혹은 언론의 뭇매 등으로 사퇴하는 혼란이 지속되었으며, 주요 정책과 노선에 대해 당론을 결집하기도 어려웠고, 매사 지도부를 흔드는 조직윤리의 부재현상 또한 적지 않았다. 당의 정책과 노선이 정립되지 못하고, 지도력이 흔들리고, 조직윤리가 이완되면서 당원과 국민들에게 준 실망감은 적지 않았다"며 "지금 당이 처한 여러 가지 어려움은 대통령과 당 지도부, 당원 여러분 모두 책임을 다하면서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후보들의 대통령 차별화와 대통령 탈당 사례를 거론한뒤 "이러한 차별화와 정부-여당의 균열은 당의 지지도나 대통령 후보들의 지지도를 올리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당 지지도와 후보 지지도, 국정 지지도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더욱 심각한 것은 여권의 분열과 대통령의 고립으로 인해 책임정치가 실종되고, 국정통제시스템이 와해되어 IMF 외환위기와 신용불량자 양산 등의 어려움을 낳는 한 배경이 되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임기' 발언과 관련, "대통령의 직분이 무엇이고, 그 책임과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는 저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 대통령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상황도 분명하다"고 전제한 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한나라당이 흔들지 않는 일이 없다. 물론 야당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며 "그러나 아무런 정책적 대안도 없고, 대화나 타협도 거부하고, 국회의 절차도 거부하니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여야에서 모두 관리내각, 중립내각, 거국 내각 등 여러 가지 제안이 무성하지만, 그러나 어느 것도 여야 간의 합의가 없는 한 실행이 불가능한 제안들"이라며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런 저런 제안만 해놓고 의논해보자고 하면 거부한다"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여당 사람들도 이런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는 모양"이라며 "가끔 야당과 같은 주장을 할 때는 답답하기 이를데 없으며, 반대나 비판만 하는 것과 실제로 일을 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역대 정부의 임기말 국정표류를 언급하며 "이 문제가 단지 대통령 개인의 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여소야대, 그것도 지역구도하의 다당제와 결합된 여소야대라는 최악의 정치구도가 그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지난해 연정을 제안했던 것은 야당과의 협력과 타협을 통해 국정의 교착상태를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었고, 연정은 합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면서도 경쟁하는 것"이라며 설명한 뒤 "물론 참여정부에서 연정은 불가능한 상태이고, 제가 다시 제안할 수도 없지만 연합정치는 한국정치의 발전과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언젠가는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참여정부는 과거 독재정권이나 제왕적 대통령제처럼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지 않는다"고 설명한 뒤 "그런데 야당은 연정도 거부하고, 여야정 정치협상같은 대화와 타협 제안마저 거부하고 있고 책임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도, 표결을 통해 결론을 내주지도 않는 상황이 되풀이되어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대통령에게만 혼자 책임을 다하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87년 이후 반복되고 있는, 지역구도와 결합되고 있는 대결적 여소야대 구도와 국정의 표류현상은 다음 대통령도 직면하게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정치권과 언론,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서 이제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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