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정치에 집착하는 노 대통령
“무슨 말해도 왜곡” 자기항변 통로오 선호
지난 10일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노무현 대통령이 14일 또다시 ‘편지’라는 형식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이날 오전 청와대 홈페이지 <청와대브리핑>에 ‘공무원 여러분께 보내는 편지’를 띄웠다.
이번 편지는 통합신당론과 당 사수론으로 갈라선 열린우리당 내부 문제에 직접 개입해 정치적 논쟁을 촉발했던 지난 4일의 ‘당원들에게 드리는 편지’와 달리 민감한 정치적 메시지는 없었다. 공무원들에게 정부정책 전문 케이블 텔레비전인 시청을 독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노 대통령이 올해 들어 공무원에게 쓴 편지만도 이번이 4번째다. 그는 중요한 사안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종종 ‘편지’로 전달한다. 왜 편지라는 형식에 집착하는 것일까.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은 “편지를 통해 국민이나 공직자들과 직접 의사소통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한다. 취임 직후인 2003년 4월18일 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주면서 ‘국민에게 드리는 편지 1-청남대에서’ 이후, 한동안 노 대통령의 편지는 파격과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최근의 잇따른 편지는 일방적 자기 주장과 항변의 통로가 됐다는 바판을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이 ‘편지’를 좋아하는 건, 적대적 언론환경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노 대통령은 언론이 자신의 기자회견이나 공식회의 발언의 맥락을 무시한 채 특정 부분만을 문제삼고 왜곡하는 일을 자주 경험하면서, 무슨 말을 해도 왜곡된다는 심한 피해의식을 갖게 됐다”며 “자기 생각 전체를 그대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편지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편지는 인터넷에 전문이 실린다. 비판이 많지만 정확한 메시지 전달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또다른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에선 대통령의 편지쓰기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자신이 뭘 이루려 했고 어떻게 그 뜻을 펼쳤는지를 편지를 통해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민생 탐방’과 같은 형식으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이는 걸 불편해하기 때문이란 평가도 내부에선 나온다. 노 대통령은 좀처럼 민생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과거 대통령들처럼 농촌이나 시장통을 다니며 서민들과 만나는 모습을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노 대통령의 한 핵심 참모는 “조기숙 전 홍보수석이 노 대통령에게 ‘정치는 이미지다. 대통령은 이미지를 통해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며 민생현장 시찰을 권해 몇차례 그렇게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곧 ‘나는 이미지 정치에 익숙치 않다’며 국민들과 직접 의사소통을 하는 쪽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편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이런 부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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