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60년간 남북 대치는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26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6사단 비무장지대(DMZ) 철책에서 육군 장병들이 경계순찰근무를 하고 있다. 철원/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박명림의 한국전쟁 깊이 읽기
⑦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⑦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1974년 종전 29년째 동독과 수교
독일문제 안정화·소련견제 성과 브라질·리비아 등의 비핵화처럼
상호 체제·안전 보장이 핵심 남북 평화조약 체결하고자 할때
전작권 환수 연기는 ‘걸림돌’ 우려
정전체제 청산 위한 지혜 모아야 1953년의 정전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는 전쟁도 없고 평화도 없는 기묘한 정전체제를 유지해왔다. 전쟁 부재와 평화 부재의 병존은, 전자를 낳은 지혜와 후자를 초래한 몽매의 공존을 말한다. 그러나 전쟁 부재가 주로 세계 구조로부터 발원하였다면, 평화 부재는 한국민들의 집단 몽매의 책임이 더 컸다.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평화체제란 특정 협정이나 조약, 기구나 제도를 뛰어넘는 관계·의식·지반·구조·체계의 총체로서 평화의식·평화문화·평화질서·평화체계의 총합을 말한다. 요컨대 공동체로서의 평화적 삶을 말한다. 실제로 상시 대결체제로서 정전체제를 극복하고 장기 상생체제로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문제는 곧 한국민들의 평화적 실존의 문제이다. 집합적 실존문제로서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의 과제는 한국전쟁과 정전체제를 초래한 두 한국 서로 및 주변국들과의 상호 인식과 관계의 전환 문제를 말한다. 곧 남북 축과 국제 축의 적대관계로부터 평화관계로의 전환을 말한다. ■ 남북, 상호 국가인정-통일추구 병행 ‘특수관계’ 설정 필요 먼저, 상호 부인과 절멸 의지가 초래한 전쟁체제 및 정전체제와 결별하기 위한 남한과 북한의 상호 인식과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평화체제 건설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남북관계는 상호 체제 인정을 위해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평화의 요체인 적대 극복과 통일 유예는 맞물린 것이다. 현재의 분단 상대를 과거 자기의 절반으로 인식하는 관념이야말로 통일 의지와 적대 의식의 공통 근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 공존을 위해 두 한국은 국가성·독립성·주권성에 대한 상호 인정을 통해 국가 대 국가로서 보편적인 국제 규범과 관계 상태에 진입해야 한다. 물론 그렇더라도 궁극적 통일을 포기해선 안 된다. 상호 국가인정과 통일 추구의 병행이라는 특수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평화 공존이 화해와 통일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특수관계의 공식화를 위해서는 일종의 남북기본조약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 남북기본조약은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핵심 조치로서 상대에 대한 인식과 규정의 전환을 위해 남북 내부의 헌법과 법률을 변전시킬 필요성을 제기한다. 평화는 곧 내부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테면 남한의 영토 조항[제3조]을 통일 전 서독 헌법의 23조처럼 확정 조항에서 잠정 조항으로 변경하고, 북한의 조선노동당 규약 전문 역시 평화 공존 지향으로 수정하여, 남북 공히 자신의 독점성과 완전성이 아니라 상대성과 잠정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민족주의 열정의 동시 산물인 통일 의지와 적대 의식이 매우 강한 남북의 한국민들이 자신들의 상대성과 잠정성을 헌법화·법률화할 수 있느냐인 것이다. 남북기본조약은 남과 북에 상호 국가 인정-안전보장과 국제 규범-국제 약속 준수의 이중의미를 갖는다. 주권과 영토는 존중되며 군사 위협·내정 간섭·상호 비방은 중단된다. 그러나 보편 가치로서의 평화·비핵·안전에 대한 상호 요구는 더욱 철저하다. 나아가 서울과 평양에는 각각 대표부를 설치하여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준행한다. 상호 대표부가 설치될 경우 적대는 크게 완화될 것이다. 또 남북조약 시대에는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서해평화협력지대는 중단과 폐쇄가 아니라 휴전선 모든 전선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삶의 공통 영역이 넓어지는 것보다 더 확실한 평화 장치는 없기 때문이다. 휴전선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가 전부 관광 지대와 공단과 평화 공원으로 전환된다면 적대는 영구히 끝나는 것과 같다. 평화가 통일의 첩경인 연유다. 60년을 넘는 남북 대치는 과연 얼마나 비정상적인 것일까? 과거 적대 국가와 한국의 관계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은 식민제국 일본과는 식민통치 종식 20년만인 1965년 수교하였다. 영토 분단과 한국전쟁의 주범으로 인식해온 소련과는 종전 38년만인 1991년 막대한 금전을 지원하며 수교하였고, 한국전쟁 참전으로 자유 통일을 저지한 중국과는 종전 39년 만인 1992년 수교하였다. 중국은 지금 한국의 제일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 파병 전쟁을 치른 베트남과는 종전 17년만인 1992년 수교하였다. 한국은 국권을 강탈하고, 분단과 전쟁 책임이 있고, 남북통일을 저지한 과거의 세 적대 제국 일본, 소련, 중국과는 모두 관계를 정상화하였다. 그러나 오직 동족 북한과는 관계 정상화에 실패하고 있다. 두 한국은 현대 세계의 모든 전쟁 사례들보다도 가장 오래 적대하고 있다. 한국전쟁 3년이 일제 식민 통치 35년보다도 더 적대적인 유산을 남겼던 것일까? 두 한국민들에게는 확실히 그렇다. 가깝고 동질적인 사이의 갈등일수록 증오와 적대는 더 깊고 더 오래간다는 근린 증오와 근린 적대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필요와 의지의 관점에서 볼 때, 일본·소련·중국·베트남과의 관계 정상화의 필요성보다 북한과의 그것이 작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결국 의지와 지혜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미, 패전한 베트남과 20년만에 수교…북한과는 60여년 적대 남북 적대와 함께 한반도 평화 문제가 풀리지 않는 또 다른 핵심 이유는 북-미 적대 때문이다. 전쟁을 치른 적대 관계에 대한 세계사적 비교를 통해볼 때 남북관계 못지않게 북-미 적대 관계의 지속이야말로 평화 정착 실패의 결정적 요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주요 전쟁 상대나 적대 국가와 곧바로 또는 적어도 한 세대 안에 관계를 정상화하여 세계 및 지역 질서와 양국관계를 평화와 안정으로 견인하였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지금 정상화해도 너무 늦은 것임에 틀림없다. 미국은 사회주의 종주국 러시아와는 러시아혁명 16년만인 1933년 복교하였다. 최악의 전범국가 일본 및 서독과는 2차 세계대전 종전 10년도 안 된 한국전쟁 시기 및 직후에 주권을 회복시키고 관계를 정상화하였다. 중국과는 1970년대 초반부터 관계 정상화를 시도하여 미중전쟁(한국전쟁) 종전 26년만인 1979년에 수교하였다. 패전의 악몽을 안긴 베트남과는 적극적인 관계 정상화 정책으로 패전 20년만인 1995년에 수교하였다. 동독과는, 서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종전 29년만인 1974년 수교하였다. 적대 관계가 한 세대를 넘은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다른 적대 사례들도 유사하였다. 상호 절멸 전쟁을 치른 독일[서독]과 소련은 종전 10년만인 1955년 수교하였다. 일본과 중국은 종전 27년만인 1972년 수교하였다. 독일(서독)과 이스라엘은 끔찍한 유태인 인종 청소 전쟁의 종식 20년만인 1965년 수교하였다. 전쟁 상대들에 대한 미국의 동맹-적대 관계의 변동과 국제 우적(우방-적국) 관계 재편에서 장기적 예외는 북한뿐이었다. 미국과 북한의 전후 60년 동안의 제재·봉쇄·적대·외교 단절은 세계사상 이례적이고 독특한 것이다. 일본-북한의 적대 관계는 미-북 적대의 파생물이었다. 미국에게 한국전쟁 경험이 독일 및 일본과의 세계전쟁 경험, 그리고 베트남 패전 경험보다 더 컸기 때문일까? 또 전후 북한의 국제 사회 및 미국에 대한 위협이 소련·중국·아랍·동독의 위협보다 더 컸기 때문일까? 이 세계 전쟁 경험 및 대국들의 위협에 비해 한국전쟁 체험과 북한의 위협은 결코 더 크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길게는 한국전쟁 정전 이후 60년, 짧게는 냉전해체 후 20년 동안 미국과 남한은 숱한 실기를 반복해왔다. 특별히 미국은 북핵 위기 악화 이전에 적어도 세 번의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다. 즉 데탕트 시기, 사회주의 붕괴 직후, 북핵 위기 타결 시점에 미국은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고 북한을 국제 사회로 견인하며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초할 기회를 놓쳤다. 민주화 이후 대부분의 남한 정부는 북-미관계 개선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일부 정부는 강한 견제도 병행하였다. 이제 한미는 세계사적 경로에 입각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일관된 개선정책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남한과 미국과 국제 사회의 이익에 부합한다. 실제로 앞의 관계 정상화들로 인한 주요 이익은 당대 국제 사회와 미국이 보았다. 소련과의 관계 복원은 훗날 반파시즘 반히틀러 연합 전선의 구축으로 연결되었다. 전범 국가 서독 및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공산 진영을 견제하는 기축 역할을 수행하였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중국의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도입을 거쳐 소련의 개혁 압박과 조락, 냉전 해체를 촉진했다. 대만 문제의 안정 역시 미중관계 정상화의 산물이었다. 동독과의 관계 개선은 독일 문제의 안정화, 소련 견제, 서독 중심의 통일 달성에 크게 기여했다.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은 인도차이나 재진출의 교두보이자 중국 견제의 지렛대였다. 국제 관계의 역사가 보여주듯 북-미관계 정상화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은 기우이다. 동맹과 적대 이중구조의 전환, 즉 미-중 관계 개선과 미-대만 관계, 미-중 관계 진전과 미-일 관계, 미-아랍 관계 개선과 미-이스라엘 관계, 미-동독 관계 개선과 미-서독관계는 병행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동맹 국가의 이익을 해치지도 않았다. 외려 두 동맹 국가의 궁극적 이익에 기여한 경우가 더 많았다. 냉전 시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적대 관계를 비교·분석하면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해법은 분명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요체는 북-미 수교를 통한 미국 안전보장과 북한 체제 보장·북핵 포기의 상호 교환, 그리고 정전협정과 평화협정, 정전체제와 평화체제를 대체하는 것이다. 다른 사례들처럼 이때 세계제국 미국의 의지와 결단이 결정적이다. ■ 북·중, 유엔 회원국이면서 유엔과 정전 중인 ‘모순’ 정전협정 체제가 산생한 기형적인 국제법 질서와 유엔체제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정전협정에 관한 한 중국과 북한은 공식적인 서명 당사자이지만 미국과 한국은 그렇지 않다. 자유 진영은 유엔이 서명 당사자이다. 게다가 현재에도 유엔 회원국 중국과 북한은 정전협정으로 인해 유엔과 정전 상태에 놓여 있다. 헌장을 준수해야 할 회원 국가가, 가입한 국제기구와 정전 중인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이면서 유엔과 정전 상태에 놓여 있는 지독한 모순 상황이다. 정전협정 폐지가 필요한 중대 이유의 하나이다. 국제법적 문제는 정전협정 체결 당시 미국과 한국의 선택으로도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유 진영은 유엔의 집단 안전보장 행위라는 참전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유엔이 남한 안전을 보장한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유엔군 사령관 자격으로 서명했다. 결국 전쟁의 실질적 당사자인 한국과 미국의 선택은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의 국제법적 당사자 문제를 계속 초래했던 것이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중국 역시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한국전쟁 적대 행위에 대해 정리하지 않았다. 하여 한국과 미국은 지금 중국과는 ‘공식적인 외교관계’와 ‘사실상의 정전관계’가 병존하는 이중 상황에 놓여 있다. 중국과 북한의 유엔 가입, 미-중 수교, 한-중 수교, 6자회담이라는 주요 계기마다 정전협정은 한 번도 정리·극복·대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북·미·중이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남한과 미국은 한반도 평화 문제와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명실상부하게 복귀하며,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평화(협정) 상대로 인정하고, 미국과 북한은 세계 최장 적대 상태를 극복하며, 중국과 북한은 유엔과의 정전 상태를 해소하고, 유엔은 한국전쟁 정전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폐절할 필요가 있다. 만약 남북이 기본조약 체결에 성공한다면 한반도 평화협정 대신 한반도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전시 작전통제권은 당연히 미국으로부터 남한으로 환수되어야 한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의 연기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북핵 문제 해결을 더욱 미루고 어렵게 할 것이 분명하다. 평화체제 구축은 실질적인 전쟁 위협의 제거를 위해 군축, 특히 비핵화로 연결되어야 한다. 즉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은 북핵 문제 해결에도 결정적이다. 불안정한 정전체제와 국제 고립, 남북 국력 격차와 흡수 통일 위기, 사회주의 붕괴의 산물인 북핵 문제 해결은 미국보다 한국에게 더욱 절실한 과제이다. 두 한국은 세계 2위의 원폭 피폭 국가일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장의 핵위기에 노출되어 왔다. 한국전쟁 자체가 전후 세계 최악의 핵전쟁 위기인 동시에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갔던 사례였다. 이후 미국의 한반도 핵무기 배치, 남한의 핵개발 시도를 거쳐 현재는 북한의 핵개발과 핵실험으로 가중되는 핵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후 한반도의 두 군사안보 체제인 정전체제와 북핵 체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 핵 문제 해결의 진화 경로들을 비교하면 해법은 분명하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은 핵 보유에도 불구하고 제재를 받지 않는다. 미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그러나 두 한국은 지정학과 분단 상태를 고려할 때 핵화의 경로를 밟아서는 결코 안 된다. 북핵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는 필수인 것이다. 그럴 때 남한·아르헨티나·브라질·리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우크라이나의 핵 포기 또는 비핵화 경로를 깊이 유념할 필요가 있다. 역시 미국의 안전보장과 안보 위협 해소 또는 적대 이웃과의 관계 개선이 결정적이었다. 결국 북핵 문제 해결은 미국과 북한, 남한과 북한의 상호 체제 인정과 안전보장, 관계 정상화가 핵심이며, 이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가 요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정전 이후 우리 앞에 여러 차례 열렸던 평화체제를 향한 기회의 창을 놓쳐버린 지금, 누가 어떻게 다시 열 수 있을 것인가? 한-중, 한-소 관계가 개선된 지금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은 가장 중요하다. 이 모든 관계들이 하나도 적대적이지 않고 우호적이라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달성되는 것이다. 평화를 향한 우리의 지혜는 더욱 깊고, 능력은 더욱 커져야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베를린 자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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