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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단독] 북 종업원들, 국정원-지배인 짬짜미에 엉겁결 한국행 가능성

등록 2016-09-26 05:00수정 2016-09-26 10:37

북한 해외식당에서 일하다 집단 탈출해 지난 4월 7일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 13명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통일부는 이 사진을 언론에 제공하면서도 언제, 어디에서 촬영된 것인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통일부 제공
북한 해외식당에서 일하다 집단 탈출해 지난 4월 7일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 13명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통일부는 이 사진을 언론에 제공하면서도 언제, 어디에서 촬영된 것인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통일부 제공
[지배인 ㅎ씨-민변 면담내용 뜯어보니]
“직원이 조선족 사귀며 잦은 외박
이들 떼놓으려 옌지에서 닝보로
‘한국영화 본 사실 신고하겠다’
앙심 조선족 찾아와 폭로 협박
소환 두려워 상의해 탈북했다”지만

직원 단독 외출·사교 불가능
1명 문제로 식당 이사 납득 안돼
상명하복 체제…탈북 상의 의문
비밀폭로 위협했다는 조선족이
국정원 직원 소개할 까닭있나
4·13 총선을 며칠 앞두고 정부가 이례적으로 공개한 이른바 ‘북한식당 집단탈북’에 국가정보원이 1만달러 상당의 자금을 지원하고 ‘제3국을 통한 탈출 경로’도 알려준 것(<한겨레> 3일치 1·5면 참조)으로 드러난 가운데, 이 식당 지배인 ㅎ씨가 함께 입국한 여성종업원들의 뜻과 무관하게 국가정보원 직원과 한국행을 논의·실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ㅎ씨와 2차례 면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25일 <한겨레> 취재 결과, ㅎ씨는 8월24일과 9월2일 민변 소속 변호사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ㅎ씨는 “인터넷으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본 것 때문에 북한에 소환돼 처벌받을까 두려워 한국에 오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지린성 옌지의 북한식당에서 일하다 저장성 닝보의 류경식당으로 옮겨온 사실을 언급하며 “한 종업원이 연길(옌지)에서 50대 초반의 조선족과 사귀며 자주 외박을 해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영파(닝보)로 갔다. 이 조선족이 1월 영파로 찾아와 (ㅎ씨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 본 것 등을 (북한) 보위부에 신고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식당에 함께 있는 보위부 직원(보위지도원)이 ‘너는 1월 말 북으로 소환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2월부터 종업원들과 논의해 한국에 가기로 3월 말 결정했다”고 탈북 동기를 설명했다. 그러나 민변은 ㅎ씨의 주장이 통상적인 탈북 과정과 북한식당 운영 방식 등에 비춰 거짓이며, 종업원들이 자유의사로 탈출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보고 있다.

의문스런 탈북 동기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한테 ‘사생활’이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이 탈출한 중국 닝보의 류경식당도 마찬가지다. 이 식당 인근 상인들은 공통적으로 “그 집 종업원들은 좀처럼 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밤 9~10시까지 줄곧 식당 안에만 있었다”고 말했다. 이 식당에서 일한 한 중국인은 “북한 종업원들은 쉬는 날에도 단독 외출이 금지됐고 4~5명이 함께 다니는 것만 허용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지난해까지 3년여 일한 옌지 식당 관계자도 “종업원들은 연길(옌지)에서 일하는 동안 식당 말고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었다”고 전했다. 지배인의 허락없이 종업원이 외부인과 사적으로 만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종업원이 외부인과 사귀는 게 가능했다 해도, 1명의 문제로 나머지 20여명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무엇보다 ㅎ씨는 민변 쪽에 “보위지도원이 ‘너는 1월 말 북으로 소환될 것’이라고 말했다”면서도 “북한에서 종업원 5명을 4월18일 더 보내줄 계획이었다”는 모순된 주장을 했다. 북한 당국이 소환될 지배인한테 종업원을 보충해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종업원과 사전 협의?

ㅎ씨는 2~3월께 종업원들과 탈북을 협의했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식당의 운영 구조나 실제 집단탈북 과정에 비춰보면 의문스런 대목이 많다.

북한식당 지배인과 종업원은 철저한 상명하복 관계다. 닝보 류경식당에서 일한 한 중국인은 “종업원들이 밥 먹을 시간인데 오지 않아서 찾으러 가보면 한줄로 서서 지배인이나 부지배인(보위지도원)한테 혼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옌지의 북한식당 관계자도 “ㅎ씨가 돈을 많이 쓰고 잘 썼는데 종업원의 노임을 다 관리했고 종업원들은 돈을 잘 벌지 못했다”고 말했다.

ㅎ씨는 지난해에도 자신의 빚 때문에 종업원들을 데리고 옌지 식당을 무단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식당 관계자는 “ㅎ씨가 빚쟁이들한테 쫓겨 헤이룽장성으로 도망갔다. 당시 종업원들은 ㅎ씨의 지시로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따라갔다가 다함께 (중국) 공안에 붙잡혀서 돌아왔다”며 “지배인이 ‘어디로 가야 하니까 가자’고 하면 종업원들은 그 말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4월5일 닝보 류경식당 탈출 직전 전체 종업원 19명 중 7명이 이탈한 사실도, 탈출 협의가 사전에 이뤄졌을 가능성을 낮춘다. 당시 종업원 3명이 기차로 2시간 거리인 항저우로 북한 당국자를 만나러 떠난 직후 ㅎ씨는 자신이 보관해온 종업원들의 여권을 챙겨 이 3명을 찾겠다며 다른 종업원 12명과 함께 식당을 나서 상하이 푸동공항으로 이동했다. 탈출을 미리 협의해 실행했다면, 종업원 3명이 이탈해 그날 밤 북한 보위부 소속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과 함께 닝보에 다시 나타났을 리 없다.

핵심 역할은 국정원?

ㅎ씨는 민변 쪽에, 말레이시아 항공권 비용 6만위안을 지원하고 ‘제3국을 경유해 입국하라’고 지도한 인물은 ‘국정원 직원’이라고 설명했다. 옌지 시절 종업원과 사귀었다는 50대 조선족의 소개로 그를 알게 됐으며 “한차례 밥을 먹은 적이 있다”고 민변 쪽에 말했다.

조선족의 신고 위협으로 탈북을 결심했다면서 이 조선족의 소개로 알게 된 국정원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는 ㅎ씨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조선족의 역할을 과장하면서 국정원 직원과의 관계는 축소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실제로 ㅎ씨는 “조선족의 소개로 알게 된 ‘남한 사람’이 국정원 직원이라는 것은 입국 뒤 보호센터에 이 사람이 면회를 오면서 알게 됐다”고 민변 변호사들에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2월께 그에게 ‘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 이유를 묻는 민변 쪽의 질문에 “국정원에서 도와줄 수 있지 어디에서 도와주겠느냐”고 되물으며 그 ‘남한 사람’이 국정원 소속임을 알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결국 ㅎ씨는 종업원들과의 협의보다는 국정원 직원인 ‘남한 사람’과 탈출 방법 등을 놓고 협의를 벌였을 개연성이 크다. 국정원 직원이 지도한 대로 말레이시아에 들어간 뒤, 이례적으로 특별한 편의와 신변보호를 제공받아 신속히 입국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 ㅎ씨가 류경에 연락한 까닭?

ㅎ씨는 보호센터 안에서 닝보 류경식당 관계자한테 여러차례 연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관계자를 관리하려는 목적이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ㅎ씨는 탈출 직전 류경 경영진한테서 100만위안 넘게 받아갔다. 류경 관계자는 “종업원들이 온 지 반년 정도여서 그만큼의 월급에, 향후 1년치 월급을 선불로 달라고 해서 줬다”고 말했다. 이들의 탈출로 ‘돈을 떼인’ 류경 경영진이 ‘집단탈북’과 관련해 불리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 입막음이 필요했을 수 있다. 류경 관계자는 “ㅎ씨가 ‘돈을 곧 갚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중국 쪽 식당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ㅎ씨가 빚이 많았다”고 말했다. 옌지 식당 관계자는 “ㅎ씨가 언변이 굉장히 좋았는데 중국 사람을 상대로 돈을 많이 꾸고 다녔다. 중국 사업가들이 종업원들의 임금 1년분을 먼저 주고 식당 인테리어도 다 해놨는데 ㅎ씨가 이 돈을 받아 도망간 일도 있다. (나와 ㅎ씨가 함께 운영한 옌지 식당의) 성공모델이 있으니 ㅎ씨의 말을 믿고 여러 사람이 투자했다가 떼였다”고 말했다. ㅎ씨가 지난해 종업원들을 데리고 옌지 식당에서 헤이룽장성으로 도망간 것도 “빚쟁이들 때문이었다”는 게 이 식당 관계자의 말이다. 류경 관계자도 “ㅎ씨가 빚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진철 기자,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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