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 탈북병 넘어온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1951년 휴전회담 ‘널문리’서 유래
정전협정 뒤 남쪽 1.2㎞ 지역에 조성
초기엔 남·북·유엔군 어울려 근무
‘도끼만행 사건’ 뒤 군사분계선 그어 2004년 한국군이 맡으며 대대 설립
3군 직할이지만 유엔사가 작전통제 개성공단 중단 뒤 직통전화도 끊겨
최근 탈북사건때도 확성기로 통보
“대치 분위기에 곳곳 CCTV 감시
북한군 접촉은 꿈도 꾸기 어려워” 지난 2000년 5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중립국감독위원회 소속 스위스군 법무관 소피 소령(이영애 분)이 남북간 총격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지척에서 얼굴을 맞대며 대치한 남북한 젊은 병사들의 서글픈 현실과 분단의 아픔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지난 13일 북한 군인이 마치 영화처럼, 북한 경비병의 총격을 받으며 탈북한 사건으로 다시 한번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관심이 집중됐다.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의 누리집을 보면, 공동경비구역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에 위치한다. 분명 우리 땅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이다. 정전협정에 따라 1950년 6·25 전쟁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결의로 설립된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는 특수지역이기 때문이다. ■ 도끼만행 사건 전까지는 남북이 함께 어울려 근무 판문점이 ‘널문리’라는 원래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유엔군과 북한·중국 사이의 휴전회담이 1951년 10월 개성에서 이곳 널문리로 옮겨오면서, 6·25 참전국이었던 중국이 이곳 지명을 ‘板門店’으로 번역한 것이다. 양쪽은 지루한 협상 끝에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서명한 뒤 애초 회담 장소에서 남쪽으로 1.2㎞ 남짓 떨어진 곳에 현재의 공동관리구역을 조성했다. 공동경비구역은 말 그대로 유엔군과 북한군이 함께 경비를 서는 구역이다. 공동경비구역에서는 애초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과 북한군이 제한 없이 서로 오가며 근무를 했다. 그러다 보니 남북이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기도 하고 물건을 교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북한명 백양나무 판문점 사건) 이후 극적으로 바뀌었다. 당시 미군이 시야를 가리던 공동경비구역 내 미루나무 가지를 절단하자 북한군이 몰려와 중단을 요구하다 시비가 붙어 보니파스 대위 등 미군 장교 2명이 살해됐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전설상의 나무꾼 이름을 딴 ‘폴 버니언’ 작전을 시행했다. 미국은 항공모함 미드웨이와 B-52와 F-111 폭격기 등을 대거 동원한 가운데 미루나무를 잘라버렸다. 이후 김일성은 북한 군사정전위 수석대표 한주경 소장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는 친서를 유엔군 수석대표에게 전달했다. 미국은 이를 사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공동경비구역엔 남북이 서로 건널 수 없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남북간 대립과 긴장감도 높아졌다. 북한은 군사분계선 남쪽 구역과 연결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 북한군인의 탈북 루트로 널리 알려진 ‘72시간 다리’를 새로 건설했다. 다리 이름은 북한이 72시간 만에 건설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북한에서는 ‘사천강 다리’라고 부른다. ■ 탈북, 위장간첩 조작, 김훈 중위 사건까지 공동경비구역은 남북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직접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이곳을 통한 탈북 시도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곤 했다. 1984년 11월엔 공동경비구역 북쪽 지역을 관광하던 소련인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 남북간 교전으로 비화한 이 사건으로 남한군 1명과 북한군 3명이 숨졌다. 1998년 2월과 2007년 9월에도 북한 군인이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탈북했으나, 남북간 유혈충돌은 없었다. 1960년대 ‘이수근 간첩 사건’은 분단의 비극이 켜켜이 새겨진 사건이다. 1967년 3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수근은 군정위 취재차 공동경비구역에 왔다가 남쪽으로 향하는 유엔군 지프에 올라탔다. 그는 반공교육의 산 모델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이태 뒤 1969년 1월 처조카 배경옥씨와 함께 위조여권으로 홍콩으로 출국했다가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 체포됐다. 이씨는 1심에서 ‘위장 귀순’으로 유죄가 인정돼 그해 7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배씨는 21년을 복역한 뒤 1989년 출소했다. 그러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7년 뒤인 2006년 12월 위장 귀순을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결론지었고, 배씨는 2008년 12월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1998년 2월엔 공동경비구역 지하벙커에서 김훈 중위가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되는 또다른 비극이 발생했다. 군 당국은 ‘자살’로 결론 내렸으나 타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9년 만인 지난 8월 국방부는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권고를 받아들여 김 중위의 순직을 인정했다. ■ 정주영 방북, 남북 소통 창구 역할도 공동경비구역은 남북간 소통의 창구 구실도 했다. 1971년 9월 남북적십자회담 1차 예비회담이 열린 이후 남북간 각종 대화가 이곳에서 진행됐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98년 6월 이곳을 통해 소 떼 1001마리를 몰고 방북해 남북 화해와 협력의 초석을 쌓았다. 공동경비구역은 매년 16만명이 찾는 ‘안보’ 관광지이기도 하다. 1983년 1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다녀간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들도 차례로 다녀갔다. 2012년 3월엔 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은이 판문점 북쪽 지역 통일각을 시찰했다. 그러나 남한엔 판문점을 다녀간 현직 대통령이 아직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판문점을 함께 방문하려 했으나, 기상 악화로 무산됐다. ■ 휴대용 확성기로 소통…영화 ‘JSA’는 없다 공동경비구역엔 정전협정 이행을 위한 기구로 군사정전위와 중립국감독위가 있다. 유엔군과 북한·중국 등 협정 당사자가 참여하는 군정위는 협정 이행을 직접 책임진다. 중감위는 유엔군이 추천한 스위스, 스웨덴과 과거 공산권이 추천한 폴란드, 체코 등 4개국 대표가 참여하며, 분쟁 예방, 협정 위반 사건 조사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현재 이들 기구는 기능 정지 상태다. 1991년 3월 유엔사가 미군이 맡던 군정위 수석대표에 한국군인 황원탁 소장을 임명하자, 북한은 “남한은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다”라고 반발하며 군정위에서 철수했다. 뒤이어 중감위 국가인 체코와 폴란드 대표단도 차례로 철수했다. 1994년 5월엔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일방적으로 새 협상 기구로 들고나오는 등 정전협정 체제를 무력화했다. 지난해 2월 개성공단 전면 중단 이후부턴 남북간 직통전화마저 끊겼다. 공동경비구역에선 이제 유엔사 장교가 통보문을 북쪽에 휴대용 확성기로 읽어주는 원시적인 방법이 유일한 소통 수단이 됐다. 군 당국자는 “이번에 북한군 귀순 사건 때도 군사분계선 앞에 가서 확성기로 우리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다. 당시 북한군은 이 내용을 녹음했다”고 말했다. 남쪽 지역 경비 업무는 2004년부터 한국군이 맡고 있다. 같은 해 7월 한국군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가 설립됐다. 군 편제상 서부전선 방어를 책임지는 제3군 사령부의 직할 부대이지만, 유엔군사령부의 작전 통제를 받는다. 군 당국자는 “유엔사 경비대대는 미군도 포함하기 때문에 병력 규모가 야전부대 대대보다 크다”고 말했다. 통상 완편 대대의 병력은 500명 안팎이다. 경비 책임이 한국군으로 이관되면서 부대 운영 방식도 바뀌었다. 정식 대대 편제에 따라 한국군 부대장이 소령에서 중령으로 한 계급 올라갔다. 장병들이 운용하는 화기도 한국제로 바뀌었다. 권총은 미군이 쓰던 이탈리아제 ‘베레타 M-9’에서 국산 ‘K-5’로 바뀌었고, 소총은 미군의 ‘M-4’에서 국산 ‘K-2’로 바뀌었다. 군 당국자는 “장병들이 먹는 음식도 기름진 미국식 ‘스테이크’에서 한국식 ‘짬밥’으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대대원들은 평상시 공동경비구역에서 남쪽으로 4㎞ 남짓 떨어진 ‘캠프 보니파스’에 주둔하면서 판문점 회담장 경비(일명 코던 근무), 초소 근무, 기동타격대(QRF) 운용, 캠프 대기, 훈련 등의 일과를 돌아가며 수행한다. 2000년대 초·중반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했다는 이아무개씨는 “회담장 건물 근처에서 부동자세로 경비를 서는 근무를 ‘코던(cordon) 근무’라고 부른다”며 “통상 관광객이 올 때 대략 20분 정도 부동자세로 서 있으면 되지만, 종종 행사 때는 몇 시간씩 그 자세로 서 있어야 해서 엄청 힘들었다. 최대 2~3시간 정도 부동자세로 서 있었던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공동경비구역은 남북이 직접 대치하는 곳이지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남북 병사가 몰래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말 한번 붙이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한다. 10여년 전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했다는 한 예비역은 “전체적으로 남북간 대치 분위기인데다 곳곳에 폐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가 돌아가며 감시를 하고 있어서 북한군 접촉은 꿈도 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비대대 병력은 모두 최정예 요원이다. 군 당국자는 “3군사령부 예하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키 174㎝, 신체 2등급 이상인 신병들을 대상으로 서류심사와 면담 등을 통해 최정예 적격자를 선발한다. 통상 130%를 우선 뽑아 무작위 추첨으로 100%를 추려낸다”고 말했다. 특히 권총 사격 능력을 중시한다. 군 당국자는 “장병들 모두 한달에 한번 이상 권총 사격 훈련을 한다. 15m와 25m를 10발씩 쏘는데 200점 만점에 140점 이상 쏘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정전협정 뒤 남쪽 1.2㎞ 지역에 조성
초기엔 남·북·유엔군 어울려 근무
‘도끼만행 사건’ 뒤 군사분계선 그어 2004년 한국군이 맡으며 대대 설립
3군 직할이지만 유엔사가 작전통제 개성공단 중단 뒤 직통전화도 끊겨
최근 탈북사건때도 확성기로 통보
“대치 분위기에 곳곳 CCTV 감시
북한군 접촉은 꿈도 꾸기 어려워” 지난 2000년 5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중립국감독위원회 소속 스위스군 법무관 소피 소령(이영애 분)이 남북간 총격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지척에서 얼굴을 맞대며 대치한 남북한 젊은 병사들의 서글픈 현실과 분단의 아픔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지난 13일 북한 군인이 마치 영화처럼, 북한 경비병의 총격을 받으며 탈북한 사건으로 다시 한번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관심이 집중됐다.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의 누리집을 보면, 공동경비구역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에 위치한다. 분명 우리 땅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이다. 정전협정에 따라 1950년 6·25 전쟁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결의로 설립된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는 특수지역이기 때문이다. ■ 도끼만행 사건 전까지는 남북이 함께 어울려 근무 판문점이 ‘널문리’라는 원래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유엔군과 북한·중국 사이의 휴전회담이 1951년 10월 개성에서 이곳 널문리로 옮겨오면서, 6·25 참전국이었던 중국이 이곳 지명을 ‘板門店’으로 번역한 것이다. 양쪽은 지루한 협상 끝에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서명한 뒤 애초 회담 장소에서 남쪽으로 1.2㎞ 남짓 떨어진 곳에 현재의 공동관리구역을 조성했다. 공동경비구역은 말 그대로 유엔군과 북한군이 함께 경비를 서는 구역이다. 공동경비구역에서는 애초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과 북한군이 제한 없이 서로 오가며 근무를 했다. 그러다 보니 남북이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기도 하고 물건을 교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북한명 백양나무 판문점 사건) 이후 극적으로 바뀌었다. 당시 미군이 시야를 가리던 공동경비구역 내 미루나무 가지를 절단하자 북한군이 몰려와 중단을 요구하다 시비가 붙어 보니파스 대위 등 미군 장교 2명이 살해됐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전설상의 나무꾼 이름을 딴 ‘폴 버니언’ 작전을 시행했다. 미국은 항공모함 미드웨이와 B-52와 F-111 폭격기 등을 대거 동원한 가운데 미루나무를 잘라버렸다. 이후 김일성은 북한 군사정전위 수석대표 한주경 소장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는 친서를 유엔군 수석대표에게 전달했다. 미국은 이를 사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공동경비구역엔 남북이 서로 건널 수 없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남북간 대립과 긴장감도 높아졌다. 북한은 군사분계선 남쪽 구역과 연결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 북한군인의 탈북 루트로 널리 알려진 ‘72시간 다리’를 새로 건설했다. 다리 이름은 북한이 72시간 만에 건설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북한에서는 ‘사천강 다리’라고 부른다. ■ 탈북, 위장간첩 조작, 김훈 중위 사건까지 공동경비구역은 남북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직접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이곳을 통한 탈북 시도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곤 했다. 1984년 11월엔 공동경비구역 북쪽 지역을 관광하던 소련인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 남북간 교전으로 비화한 이 사건으로 남한군 1명과 북한군 3명이 숨졌다. 1998년 2월과 2007년 9월에도 북한 군인이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탈북했으나, 남북간 유혈충돌은 없었다. 1960년대 ‘이수근 간첩 사건’은 분단의 비극이 켜켜이 새겨진 사건이다. 1967년 3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수근은 군정위 취재차 공동경비구역에 왔다가 남쪽으로 향하는 유엔군 지프에 올라탔다. 그는 반공교육의 산 모델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이태 뒤 1969년 1월 처조카 배경옥씨와 함께 위조여권으로 홍콩으로 출국했다가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 체포됐다. 이씨는 1심에서 ‘위장 귀순’으로 유죄가 인정돼 그해 7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배씨는 21년을 복역한 뒤 1989년 출소했다. 그러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7년 뒤인 2006년 12월 위장 귀순을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결론지었고, 배씨는 2008년 12월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1998년 2월엔 공동경비구역 지하벙커에서 김훈 중위가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되는 또다른 비극이 발생했다. 군 당국은 ‘자살’로 결론 내렸으나 타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9년 만인 지난 8월 국방부는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권고를 받아들여 김 중위의 순직을 인정했다. ■ 정주영 방북, 남북 소통 창구 역할도 공동경비구역은 남북간 소통의 창구 구실도 했다. 1971년 9월 남북적십자회담 1차 예비회담이 열린 이후 남북간 각종 대화가 이곳에서 진행됐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98년 6월 이곳을 통해 소 떼 1001마리를 몰고 방북해 남북 화해와 협력의 초석을 쌓았다. 공동경비구역은 매년 16만명이 찾는 ‘안보’ 관광지이기도 하다. 1983년 1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다녀간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들도 차례로 다녀갔다. 2012년 3월엔 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은이 판문점 북쪽 지역 통일각을 시찰했다. 그러나 남한엔 판문점을 다녀간 현직 대통령이 아직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판문점을 함께 방문하려 했으나, 기상 악화로 무산됐다. ■ 휴대용 확성기로 소통…영화 ‘JSA’는 없다 공동경비구역엔 정전협정 이행을 위한 기구로 군사정전위와 중립국감독위가 있다. 유엔군과 북한·중국 등 협정 당사자가 참여하는 군정위는 협정 이행을 직접 책임진다. 중감위는 유엔군이 추천한 스위스, 스웨덴과 과거 공산권이 추천한 폴란드, 체코 등 4개국 대표가 참여하며, 분쟁 예방, 협정 위반 사건 조사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현재 이들 기구는 기능 정지 상태다. 1991년 3월 유엔사가 미군이 맡던 군정위 수석대표에 한국군인 황원탁 소장을 임명하자, 북한은 “남한은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다”라고 반발하며 군정위에서 철수했다. 뒤이어 중감위 국가인 체코와 폴란드 대표단도 차례로 철수했다. 1994년 5월엔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일방적으로 새 협상 기구로 들고나오는 등 정전협정 체제를 무력화했다. 지난해 2월 개성공단 전면 중단 이후부턴 남북간 직통전화마저 끊겼다. 공동경비구역에선 이제 유엔사 장교가 통보문을 북쪽에 휴대용 확성기로 읽어주는 원시적인 방법이 유일한 소통 수단이 됐다. 군 당국자는 “이번에 북한군 귀순 사건 때도 군사분계선 앞에 가서 확성기로 우리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다. 당시 북한군은 이 내용을 녹음했다”고 말했다. 남쪽 지역 경비 업무는 2004년부터 한국군이 맡고 있다. 같은 해 7월 한국군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가 설립됐다. 군 편제상 서부전선 방어를 책임지는 제3군 사령부의 직할 부대이지만, 유엔군사령부의 작전 통제를 받는다. 군 당국자는 “유엔사 경비대대는 미군도 포함하기 때문에 병력 규모가 야전부대 대대보다 크다”고 말했다. 통상 완편 대대의 병력은 500명 안팎이다. 경비 책임이 한국군으로 이관되면서 부대 운영 방식도 바뀌었다. 정식 대대 편제에 따라 한국군 부대장이 소령에서 중령으로 한 계급 올라갔다. 장병들이 운용하는 화기도 한국제로 바뀌었다. 권총은 미군이 쓰던 이탈리아제 ‘베레타 M-9’에서 국산 ‘K-5’로 바뀌었고, 소총은 미군의 ‘M-4’에서 국산 ‘K-2’로 바뀌었다. 군 당국자는 “장병들이 먹는 음식도 기름진 미국식 ‘스테이크’에서 한국식 ‘짬밥’으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대대원들은 평상시 공동경비구역에서 남쪽으로 4㎞ 남짓 떨어진 ‘캠프 보니파스’에 주둔하면서 판문점 회담장 경비(일명 코던 근무), 초소 근무, 기동타격대(QRF) 운용, 캠프 대기, 훈련 등의 일과를 돌아가며 수행한다. 2000년대 초·중반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했다는 이아무개씨는 “회담장 건물 근처에서 부동자세로 경비를 서는 근무를 ‘코던(cordon) 근무’라고 부른다”며 “통상 관광객이 올 때 대략 20분 정도 부동자세로 서 있으면 되지만, 종종 행사 때는 몇 시간씩 그 자세로 서 있어야 해서 엄청 힘들었다. 최대 2~3시간 정도 부동자세로 서 있었던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공동경비구역은 남북이 직접 대치하는 곳이지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남북 병사가 몰래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말 한번 붙이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한다. 10여년 전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했다는 한 예비역은 “전체적으로 남북간 대치 분위기인데다 곳곳에 폐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가 돌아가며 감시를 하고 있어서 북한군 접촉은 꿈도 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비대대 병력은 모두 최정예 요원이다. 군 당국자는 “3군사령부 예하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키 174㎝, 신체 2등급 이상인 신병들을 대상으로 서류심사와 면담 등을 통해 최정예 적격자를 선발한다. 통상 130%를 우선 뽑아 무작위 추첨으로 100%를 추려낸다”고 말했다. 특히 권총 사격 능력을 중시한다. 군 당국자는 “장병들 모두 한달에 한번 이상 권총 사격 훈련을 한다. 15m와 25m를 10발씩 쏘는데 200점 만점에 140점 이상 쏘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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