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국방·북한

문 대통령의 북핵해법, 바이든 설득에 성공한 듯

등록 2021-05-02 13:16수정 2021-05-02 20:22

[미 대북정책 재검토 완료]
미 정부, 문 대통령 제시한 ‘싱가포르 합의’·‘단계적 해법’ 사실상 수용
2019년 ‘하노이 결렬’ 이후 북-미 직접대화 재개되려면 고비 넘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마무리한 뒤 공동성명 서명식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마무리한 뒤 공동성명 서명식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연합뉴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이 30일 언급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 결과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을 희망해 온 한국 정부의 희망 사항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직 최종 결과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2018년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출발점으로 삼아 북-미가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을 상당 부분 반영한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은 지금까지 크게 두 차례였다.

첫번째는 지난 1월18일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제 곧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에게 “트럼프 정부에서 있었던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선언이었다. 싱가포르 선언에서 다시 시작해서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이루는 그런 대화 협상을 해나간다면 좀 더 속도 있게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를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미국의 ‘대북 정책 재검토’가 사실상 막바지에 이른 지난 21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선 “미국과 북한이 서로 양보와 보상을 ‘동시적으로’ 주고받으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30일 나온 사키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과 미 <워싱턴포스트>가 소개한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을 모아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이뤄내자는 한국 정부의 구상을 상당 부분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사키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우리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일괄타결(그랜드 바겐·빅딜)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에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앞선 두 행정부의 접근법을 절충한 ‘스몰 딜’을 통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을 해 나갈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말이었다. 이어, 익명의 미 고위 당국자는 1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우리의 접근은 싱가포르 합의와 다른 이전의 합의들 위에 (성과를) 쌓아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결과를 도출해 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바이든 정부는 싱가포르 합의가 트럼프 때 이뤄진 것이어서 애초 부정적 입장이었는데 정부가 (미국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에게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자신들이 부정해야 하는 전임 행정부의 유산이었다. 또 이 합의에 대해서는 2018년 6월 합의가 공개된 직후부터 미국이 너무 양보했다는 ‘매파’들의 공격이 이어져 왔다. 그렇다고 이 합의를 폐기하면, 미국이 달성해야 하는 최종 목표인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북을 압박할 근거가 사라지게 되는 ‘외교적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 세계 앞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한 이 성명을 받아들이는 현실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그 다음 난관은 단계적 접근이었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지난 3월23일 브리핑에서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며, 트럼프 행정부 시절 대북 정책을 담당했던 당국자들은 물론 1990년대 이후 대북 외교에 관여했던 모든 인물들, 미 행정부 내 여러 부처들, 한·일 등 동맹들을 상대로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었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 때처럼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 아래 북핵 문제를 방치할 수도, 트럼프 행정부 시절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실패했던 것처럼 ‘빅딜’을 통해 북핵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이 두개의 극단을 절충하는 단계적 접근일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과정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북한과 오랜 기간 협상했던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으로부터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다. 비건 전 부장관은 2019년 2월 말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주장해 온 단계적 해법을 수용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볼턴 전 보좌관 등의 막판 뒤집기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이 재검토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간, 문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다시 한번 강한 어조로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대북 정책 재검토의 최종안을 보고하기 직전인 지난 21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이 단계적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 인터뷰가 실제 미국 정부의 의사 결정에 얼만큼 영향을 끼쳤는지는 불명확하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최종 결론에 한국의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북-미 대화로 향해 가는 앞길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예상보다 유연한 대북 접근법을 택했지만, 의미 있는 대화가 시작될 여건이 성숙돼 있지 않다. 지난 2019년 2월 말 ‘하노이 실패’ 이후 북은 자력갱생을 외치며, 한-미 연합훈련 중지, 첨단 전략자산 도입 금지 등 ‘체제 보장’과 관련된 근본적 요구를 쏟아내는 중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 연합훈련은 계속 실시한다는 입장(3월22일 백악관 고위 당국자)이고, 한국 정부 역시 북한이 싫어하는 F-35 등 첨단 전략자산의 도입을 미룰 생각이 없다.

결국, 북한은 미국이 완전한 재검토 결과를 공개할 때까지 상황을 관망하면서, 당분간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자력갱생의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전략적 도발을 걸어올 가능성도 있다. 미 당국자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 전략이 “핵 도발에 대한 북한의 단기적 계산법(calculus)을 바꿀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전망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평화를 위해 당당한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1.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2.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3.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4.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5.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