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전종훈 대표 신부(가운데)가 5일 오후 서울 상계동 수락산성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작성한 ‘떡값 명단’을 추가로 발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제단 3명 폭로 파급력
권력핵심 연루 거명…국정운영 큰 부담
4.9 총선 앞두고 정치쟁점화 가능성도
권력핵심 연루 거명…국정운영 큰 부담
4.9 총선 앞두고 정치쟁점화 가능성도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5일 공개한 삼성 로비 대상자들은 애초 예상보다 적은 3명뿐이었지만, 청와대 민정수석과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등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포함돼 메가톤급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로비 대상으로 지목된 임채진 검찰총장을 비롯해 사정기관의 총수들이 삼성 특검의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면서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4·9 총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적 파장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장과 민정수석은 검찰총장과 함께 국가의 사정·정보 기능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국가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인 수사 기능을 조정하고 관리해야 하는 이들이 오히려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된 셈이다.
이종찬 민정수석은 이학수 삼성 부회장을 직접 찾아가 휴가비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큰 타격을 받게 됐다.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는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뇌물을 전달했다고 밝힘에 따라 당장 청문회에서 집중포화를 맞고, 특검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 관계자는 “‘정황증거’가 적용되는 다른 로비 대상자들과 달리 김 후보자에게는 ‘직접증거’가 적용된다. 이것만으로도 수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사퇴 압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검찰 관계자는 “비리 의혹이 제기된 기관장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며 “특검에 소환될 경우 사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제단은 이날 “스스로 공직을 거절하거나 사퇴하라”며 이들의 사퇴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이 수석 등은 물론 돈을 준 것으로 지목된 삼성 쪽이 모두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데다, 현금으로 오간 떡값의 특성상 별다른 물증이 없어 이들의 혐의를 입증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검팀은 지난해 사제단이 삼성 로비 대상이라며 공개한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이종백 전 서울고검장의 조사 여부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가 진술 말고는 구체적인 물증을 제출하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며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증거 없이 단순히 정황이나 진술만으로 당사자들을 소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날 사제단 발표에 앞서 윤정석 특검보가 “(명단 공개 뒤) 특검팀에 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희망’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가 사제단의 주장만으로 두 사람을 교체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정권 초기부터 정보·사정 라인의 두 핵심이 비리 의혹을 받음에 따라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잇따른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와 함께 국민들에게 ‘부자 내각’, ‘의혹 정부’라는 인식이 짙어질 것도 부담이다. 김 후보자와 이 수석이 이날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도 의혹 확산을 차단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문제는 한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이날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자유선진당은 “이명박 정부가 ‘고소영 정부’와 ‘부동산 내각’에 이어 ‘떡값 정부’라는 말까지 듣게 됐다”며 삼성 특검의 엄정한 수사와 관련자 사퇴를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구체적인 증거 없는 폭로로 특검 수사에 영향을 끼치고, 새 정부에 흠집을 내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맞섰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야당으로서는 총선을 앞두고 호재를 만난 셈”이라며 “그러나 야당의 공세가 지나치면 역풍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일 황준범 기자 namfic@hani.co.kr
김남일 황준범 기자 namfic@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