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대통령 기록물 열람’ 논란
파일번호·용량으로도 진본-사본 구별가능
전체 열람도 의문…“수사 자체 잘못” 지적
파일번호·용량으로도 진본-사본 구별가능
전체 열람도 의문…“수사 자체 잘못” 지적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결국 노무현 전 정부 시대의 사초(대통령 지정기록물)를 열어보기로 했다.
21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하드디스크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노 전 대통령이 반납한 자료와 대조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서 15~30년 동안 비공개하도록 한 ‘지정 기록물’ 37만건이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6개월 만에 검찰에 공개될 처지에 놓였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시절의 기록물 진본과 사본이 같은지를 확인하는 차원이므로 “되도록 내용을 보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이 과정에서 지정 기록물의 노출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공개는 이 기록물에 대한 권한을 가진 국가기록원의 고발에 따라 검찰이 수사 목적으로 압수영장을 받아 열람한다는 점에서 법적 절차에서는 문제점이 없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17조 4항은 관할 고등법원장이 해당 대통령 지정기록물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하면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열람, 사본제작, 자료제출을 허용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번 검찰의 대통령 지정기록물 열람은 몇 가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테면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진본과 사본의 동일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체 지정기록물의 내용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거리다. 왜냐하면 지정기록물 파일의 고유 식별번호와 파일의 용량 등을 서로 확인·비교하면 그 동일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동일성 여부의 확인은 영장 집행이 아니라, 대통령기록관의 협조에 의해서도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는 것이 노 전 대통령 쪽의 의견이다.
또 이번 압수영장에서 허용한 열람이 모든 지정기록물에 해당한다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지난 8일 서울고등법원장에게 제출한 글에서 “이번 사건에서 문제되는 것이 개별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내용이 아님에도 전체 지정기록물에 대한 열람을 허용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모든 지정기록물을 공개하는 것이 돼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취지를 달성할 수 없다”며 전체 지정기록물의 열람을 허용하는 영장 발부에 반대한 바 있다.
더욱이 대통령 지정기록물 제도를 둔 취지는 중대한 의미가 있는 대통령 기록물의 비밀을 일정 기간 보호하고 재임 동안 더 많은 기록물을 남기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6개월 만에 지정기록물의 내용이 검찰에 공개됨으로써 지정기록물 보호와 관련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됐다. 행정안전부의 한 관계자는 “지정기록물 조항을 둔 것은 대통령의 기록물을 보호하려는 목적뿐 아니라, 대통령 기록물을 생산한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인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런 취지는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압수영장 집행을 넘어 이번 사건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 유감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직 대통령의 기록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첫 사례부터 전·현직 청와대가 원만하게 타협하지 못하고 이런 사태에 이른 것이 근본적으로 문제”라며 “대통령기록물을 둘러싼 논란을 검찰이 수사 대상으로 삼은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밝혔다. 김규원 신승근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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