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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전자들 ‘춤 놀이’에 숨은 ‘게임의 규칙’ 찾아라

등록 2008-01-02 20:19

부부 물리학자 김용백·기혜영 교수
부부 물리학자 김용백·기혜영 교수
부부 물리학자 김용백·기혜영 교수 인터뷰
“전자 낱개의 정체는 밝혀졌으나 ‘집단행동’은 미스터리
“움직임 따라 ‘물성’ 달라져…규칙 알면 제3 물질 생성 가능
“실용화요? 자유로운 기초연구야말로 새로운 기술의 원천”

우리는 지금 전자 낱개를 하나 하나 제어할 정도의 초정밀 반도체 시대에 살고 있다. 전자제품에 둘러싸인 21세기 전자문명의 시대에, 전자의 정체는 다 파악됐는가? 이런 물음을 던진다면 물리학자들은 뜻밖에도 “전자 개개는 많이 이해하고 있지만 전자 집단의 행동은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다”고 답할 것이다.

“전자들은 혼자 놀 때와 집단을 이뤄 놀 때 완전히 딴 판입니다. 인간 개인과 인간 사회가 전혀 다르듯이 말입니다. 그 집단행동을 충분히 이해하는 날이 오면 우리는 물질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새로운 물질을 얻을 겁니다.” 최근 국내 고등과학원에서 ‘양자 자성 국제학회’를 연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부부 물리학자 김용백(42) 교수와 기혜영(42) 교수는 2일 “전자의 집단행동은 현대 고체물리학이 풀어야 할 최대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라며 국내에선 생소한 이 분야의 연구 흐름을 전했다.

초전도체 위에 자석을 올려놓으면 초전도체는 외부 자기장을 밀쳐내어 자석은 공중에 뜨게 된다. 초전도체에선 전자들이 강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쌍’을 이뤄 마치 한 몸인듯이 흘러 저항은 0에 가까워져 전류 손실이 거의 일어나지 않으면서 외부 자기장은 밀쳐내는 성질이 나타난다. 사진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제공
초전도체 위에 자석을 올려놓으면 초전도체는 외부 자기장을 밀쳐내어 자석은 공중에 뜨게 된다. 초전도체에선 전자들이 강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쌍’을 이뤄 마치 한 몸인듯이 흘러 저항은 0에 가까워져 전류 손실이 거의 일어나지 않으면서 외부 자기장은 밀쳐내는 성질이 나타난다. 사진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제공
우리는 흔히 자유전자의 흐름이 일어나는 ‘도체’와 전자가 원자 주변에서 붙박이로 자리를 지키는 ‘부도체’, 그리고 쇠붙이에 달라붙는 ‘자성체’와 그렇지 않은 ‘비자성체’로 물질을 나눈다. 그런데 이런 물성의 차이가 다름 아닌 전자의 집단행동 차이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이 그동안 현대의 미시 물리학에서 밝혀져왔다.

“자성은 일종의 ‘전자들의 합창’이지요.”

기 교수는 “전자들은 언제나 두 가지의 춤(‘스핀’)을 추는 상태에 놓여 있는데, 전자들이 주변 전자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같은 춤을 출 때 이런 자성도 생겨나기에, 자성은 곧 ‘전자 집단의 춤 놀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두 가지의 춤이란, 전자들이 양자 세계에서 지니는 두 가지의 정해진 존재 방식을 말한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두 상태를 ‘스핀 업’ ‘스핀 다운’이라는 말로 구분하고 화살기호 ↑, ↓로도 표현한다.

김 교수가 전자들의 기이한 집단행동 사례를 들었다.


전자들의 집단행동을 설명하는 물리학의 여러 모형 그림. 전자 개개의 상태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게임의 규칙’을 지니고 있다. 그림1은 한복판에서 시작해 가로, 세로, 대각선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전자들의 스핀이 일정한 패턴을 띰을 보여준다. 그림2는 삼각형 격자 모양의 배열에서 바로 옆의 전자들끼리는 정반대의 스핀을 갖는다는 규칙을 보여주는데, 이때 한 가운데의 스핀은 왼쪽과 상호작용할지, 오른쪽과 상호작용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존재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런 불안정한 전자를 지닌 물질에 자기장이나 압력을 가하면 물질의 성질이 바뀐다. 그림3에선 자유롭게 흐르는 잉여 전자 2개가 한복판 전자 스핀의 영향 때문에 서로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쌍’을 이뤄 똑같은 행동을 나타낸다.
전자들의 집단행동을 설명하는 물리학의 여러 모형 그림. 전자 개개의 상태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게임의 규칙’을 지니고 있다. 그림1은 한복판에서 시작해 가로, 세로, 대각선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전자들의 스핀이 일정한 패턴을 띰을 보여준다. 그림2는 삼각형 격자 모양의 배열에서 바로 옆의 전자들끼리는 정반대의 스핀을 갖는다는 규칙을 보여주는데, 이때 한 가운데의 스핀은 왼쪽과 상호작용할지, 오른쪽과 상호작용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존재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런 불안정한 전자를 지닌 물질에 자기장이나 압력을 가하면 물질의 성질이 바뀐다. 그림3에선 자유롭게 흐르는 잉여 전자 2개가 한복판 전자 스핀의 영향 때문에 서로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쌍’을 이뤄 똑같은 행동을 나타낸다.
어떤 물질에서 어떤 전자가 스핀↑ 상태가 되면 주변의 전자들이 ‘도미노 현상’처럼 일사불란하게 스핀↑ 상태를 따라 한다. 모두 같은 춤 놀이를 즐긴다. 다른 물질에선 한 전자가 스핀↑ 상태이면, 바로 곁의 전자들은 ↓ 상태, 그 다음 전자는 다시 ↑ 상태를 띠며 일정한 패턴을 거듭한다. 물론 ↑ ↑ ↓ ↑ ↑ ↓ 같은 전자 스핀의 줄서기도 일어날 수 있다. 중요한 건 거기에 규칙이 있다는 거다.

김 교수는 “이런 집단행동에 따라 부도체가 자성을 띠거나 반자성, 비자성을 띠기도 한다”고 말했다. 달리 말해, “전자들의 춤 놀이에 숨어 있는 ‘게임의 규칙’과 커뮤니케이션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갖가지 전기와 자기 성질을 띠는 물질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이 분야 연구자들은 스스로 전자들의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전자들의 사회학 연구자를 자처한다.

거기에는 인간 사회처럼 거대한 복잡함이 있다. 전자들의 스핀 상태에 대한 양자역학 수준의 이해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원자들은 삼각형, 사각형, 육각형 같은 격자 모양을 이루며 늘어서 있게 마련이고 전자들은 이런 원자들의 배열 사이를 헤집고 자유전자 운동을 하거나 원자들 곁에서 붙박이 전자로 머무는데, 이처럼 전자들의 놀이 무대가 되는 원자 배열이 전자의 집단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이해돼야 한다. 또한 본래 전자가 흐르지 않는 부도체에다 잉여 전자를 빼거나 집어넣으면, 부도체가 전도체로 ‘형질전환’ 하고 ‘고온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도 아직 설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다. 부부 물리학자는 “복잡계 연구가 그렇듯이 전자들의 놀이 규칙을 이해하는 데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전자 집단 연구는 사회생물학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면 거기엔 인간 개체와 달리 ‘사회유기체’라는 또다른 초인격체가 발현된다고 보는 사회생물학의 일부 관점과 비슷하게, 물리학자들은 “전자 낱개들이 모이면 낱개의 단순 합과는 다른 제3의 성질이 발현된다”고 믿고 있다. 김 교수는 이런 규칙들은 “전자 개개의 본성을 연구해선 알 도리가 없는 집단의 규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초전자체’를 말하고 있는 걸까?

전자들의 상호작용을 인간이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다면? “잉여전자를 넣거나 빼는 방식으로 전자들의 상호작용에 개입함으로써, 아마도 평범한 물질을 극한의 초전도체로, 또는 극한의 도체나 부도체로,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완전히 다른 물질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연구는 어떤 분야에서 실용화에 기여할까? 부부 교수는 ‘실용화’라는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한국에선 실용화에 너무 집착합니다. 실용화를 의식하지 않고 연구하던 고체물리학자들이 트랜지스터를 발명하고 (하드디스크의 원리인) 거대자기저항(GMR)을 발견해 노벨상을 타지 않았습니까? 자유로운 기초연구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진짜 새로운 기술의 원천이지요.” 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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