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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카이브

[조영래 칼럼] '폭력혁명'과 '무분별'과 질서

등록 2018-05-14 18:21수정 2018-05-14 22:58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8년 8월 18일 한겨레신문 1면 '한겨레 논단'

조영래 논설위원·변호사

조영래 논설위원·변호사
조영래 논설위원·변호사
얼마 전에 발표된 <조선일보>·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노태우 대통령과 야권의 세 김씨 중에서 노 대통령이 가장 높은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여론조사 결과를 절대시하여 노 대통령의 모든 정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겠고, 또 반대로 그것을 아예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부정하여 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좀 달리 생각한다. 야권의 세 김씨가 모두 수십 년에 걸쳐 하나하나의 행적에 대하여 국민의 관심과 주시의 표적이 되어 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노 대통령은 애초에 이렇다 할 국민적 기대나 관심을 모으고 있지 않았던 터에 지금부터 겨우 1년 남짓 전의 일인 `6·29 선언'을 통하여 `혜성'처럼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이래 듣기에 아름다운 여러 가지 민주화의 약속만을 거듭해 오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아직 노 대통령에게 어떤 장밋빛 기대를 품고 있다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할 일도 아니겠고,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노 대통령의 현실적 정책에 대한 확고한 국민적 지지로 확대 해석해서도 안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현실적 정책에 대한 역사의 시험은 이제부터 서서히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이 시점에서 노 대통령이 행여나 자만에 빠지거나 방심한 나머지 `6·29 선언' 당시의 초심을 저버리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엊그제의 광복절 경축사를 듣고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현재 우리가 민주주의를 진전시켜 나가는 데서 직면하고 있는 두 가지 도전”으로서, 첫째로는 “폭력혁명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여 계급독재 체제를 세우겠다는 세력”, 그리고 둘째로는 “욕구와 갈등의 무분별한 분출로…민주주의의 틀을 위협하고 있는 사회 일각의 현상”을 들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하여는 우리가 들뜨지 말고 보다 냉철한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폭력혁명으로…계급독재 체제”를 세운다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의 제반 현실적 조건 아래서 가능한 일인가? 적어도 현재와 예견 가능한 장래에 있어서까지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아야 온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위험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민주주의의 진전을 정지시키거나 혹은 역류시킬 이유로 삼으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욕구와 갈등의 표출”이라는 것은 민주사회의 본질적인 양상인 것이며 민주화 조치란 바로 이것을 시인하고 허용하는 데에 그 핵심적 의의가 있다.

`무분별한 분출'이란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분별'한 것인가에 대해서 국가권력이 성급하게 일방적인 판정을 내리려 들어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은 `6·29 선언'을 했을 때 그동안 독재체제 아래서 억눌려 온 국민 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되는 것을 당연히 예상했으리라고 생각된다. 과거의 억압이 지나쳤던 만큼 반사적으로 오늘의 `욕구 분출'이 다소 `무분별'하게 비칠는지도 모르나 아직껏 `민주주의의 틀을 위협'할 정도의 일이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선진국으로 가는 새로운 질서'는 진정한 민주질서 이외의 다른 것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세우기 위해서는 국민도 그렇겠거니와 정부 또한 끈질긴 참을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의 하나라도 `편리하고 좋았던 구시대의 질서'로 복귀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혀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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