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물자원센터 연구실에 보관중인 미생물 배양체들. 대전/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이젠 환경월드컵] ① 생물자원이 돈이다
첨단생명공학 접목 신약·신물질 개발 ‘소리 없는 전쟁’
첨단생명공학 접목 신약·신물질 개발 ‘소리 없는 전쟁’
지구상의 생명체는 약 1250만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해마다 2만5천~5만종씩, 한반도에서만 500종씩 사라져가고 있다. 100년 뒤엔 과연 몇종이나 살아남을 것인가.
생명체의 보존이 지구 공통의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생물자원의 경제적 가치도 점점 부각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소리없는 전쟁’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침 2010년에 열릴 예정인 유엔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 2012년의 유엔환경개발회의(일명 지구정상회의, 리우+20) 둘다 순서상 아시아 대륙 개최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운동가와 기업인 등을 중심으로 한국 개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의정서’는 일본(교토)이 선점했지만 생물다양성 의정서는 한국에서 맺도록 하자는 것이다.
습지보존을 위한 람사협약 국제회의가 2008년 10월 경남 창원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2010년과 2012년 환경 회의까지 한국에서 열린다면, 환경 선진국이란 ‘브랜드 효과’도 만만하지 않을 전망이다. 2004년 월드컵이 스포츠 한국을 알렸다면 이제는 ‘환경 한국’으로 한단계 도약할 때가 된 것이다.
한국 식물유전자원 15만점 보유 세계 6위 불구
화훼시장서 장미·국화 국산 품종 보급률 1%선
품종연구 80년 뒤져…정부, 10년간 1조 투자계획 “일본인 공대 교수가 한국에 와서는 자꾸 야산에 가자고 조른다는 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조은기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 연구개발국장은 지인한테서 이상한 말을 전해들었다. 이내 역추적이 이뤄졌다. 조사 결과 일본인 교수가 숨겨놓은 식물수집 전문가와 함께 국내 야생콩 종자를 채집하려던 사실이 확인됐다. 공동연구차 한국을 방문한 공대 교수의 또다른 신분은 ‘종자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2년 전의 일이다.
올 상반기 일본은 국내에서 재배·유통되는 딸기 품종에 대한 로열티로 60억원을 요구했다. 전체 시장의 85% 가량이 일본 품종인 탓이다. 반면 국내 품종은 10%(2005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독일계 장미육종회사 코로사는 농수산물유통공사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그해 11월 승소했다. 자사 품종을 무단으로 증식해 기른 장미를 화훼공판장에 경매·전시했다는 이유였다. 현재 국내 종자 시장의 대외 로열티는 200억원 규모(채소시장 포함)에 이른다. ‘총성없는 전쟁’이 치열하다. 식물의 ‘종자’를 둘러싼 전쟁에는 전선도 보이지 않는다. 종자가 곧 돈이니, 나라마다 ‘해적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 유럽 등 종자기술 선진국들은 이미 종자 채집과 신품종 개발 수준을 넘어 또다른 곳으로 전선을 넓혔다. 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식물추출물에서 신약·신물질을 개발하는 ‘2차 종자전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식물과 미생물을 포함한 전세계의 유전자원 시장을 연간 9천조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뒤늦게 전쟁에 뛰어든 우리나라는 이들을 뒤쫓느라 숨이 가쁘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종자가 국가산업도 바꾼다=말레이시아는 고무만 팔던 나라였다. 그러나 이젠 팜오일(과수)이 주요산업이다. 1970년대 중반 아프리카에서 채집한 팜오일 유전자원을 개량해 키가 작으면서도 기름 함량은 많은 품종을 개발했다. 현재 연간 10조원의 수익이 여기서 나고 있다. 관련 기술을 토대로 꾸민 자연생태 공원에서 연간 3조원의 관광 수입까지 올린다. 팜오일 산업이 없었다면 말레이시아는 1~2조원 정도의 수익에 만족하는 고무나라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달 초 말레이시아 쪽과 유전자원 교환 문제를 논의하고 돌아온 정혁 박사(한국생명공학연구원)는 “경제적으론 낙후됐지만 이 부문에선 깨어 있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나라마다 무한질주=조은기 국장은 2000년 미국 오레곤주의 한 유전자원연구기관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산간에서 자라는 토종 개암나무가 1㏊에 걸쳐 재배되고 있었는데 나무마다 적힌 ‘채집 장소’가 바로 한국의 봉화, 평양, 진안 등이었다. 채집 시기는 40~50년 전이었다. 미래 식량이나 바이오 에너지화가 가능한 ‘기름 작물’로 활용하기 위해 개암종자를 한국에서 가져다 40~50년 이상 재배·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 국장은 “우린 아직 이 작물에 관심도 없는데, (무단으로 가져간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정리해놓은 것을 보고 창피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토종 종자가 많지 않지만 이렇게 각국에서 수집한 종자를 포함해 식물유전자원 46만5천점(세계 1위)을 보존하고 있다. 최근 우리 농진청은 중국 쪽에 콩 종자를 상호교환해 연구하자고 제의했다.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산 콩은 중국 재래종과 한국의 재래종이 교배된 결과물이란 게 정설이다. 2만5천점의 거대 콩 종자군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이를 수락했다. 하지만 한해 10점 이하로 제한했다. 사실상 거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견제 때문에 “종자 수집이 거의 첩보 영화처럼 이뤄진다”고 안완식 박사(한국토종연구회 전 회장)는 말했다. 농림부의 한 고위간부는 일본의 공대 교수 사례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비공식적’ 수집 방식이 있다”면서도 더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기업에는 ‘제2의 반도체’=종자산업은 자본과 시간으로 승부하는 산업이다. 1개 과수 품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20년의 연구 기간과 3천개 이상의 교배 실생(발아성장)을 통한 특성 연구결과가 필요하다. 듀폰, 신젠타 등 세계 10대 종자사들이 다양한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와 가치를 키우는 까닭이다. 최근 세계 2위의 종자회사였던 미국 몬샌토는 1868년 설립된 세계 최대 채소종자업체 세미니스(네덜란드계)를 인수합병하며 제1의 종자·생명공학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들 기업의 경쟁은 반도체 산업 못지 않게 치열하다. 캐나다 사스카툰 대학 물질과학연구소에는 몬샌토, 듀폰, 신젠타 등이 모두 들어가 있다. 인재 채용 다툼이 심해 정부와 대학이 유전자원 프로젝트 진행과 보안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세미니스는 서울대 등 세계 각지 100개 이상의 연구기관과 기술협력을 맺고 있다.
정부 “10년간 1조3천억 투자하겠다”=우리나라는 15만점의 식물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양적으로는 세계 6위 수준이다. 하지만 보존 종자를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성분분석은 10~15%밖에 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 산업의 중요성에 눈을 뜬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50~60년 역사를 가진 업체를 포함해 국내 5대 종자회사 중 4개가 다국적 기업에 인수합병돼 그나마 가지고 있던 종자와 육종기술이 통째로 넘어가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우리가 입은 경제적 손실은 수치로 계량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평가다.
현재 남은 기업들도 배추, 고추, 무 등 전통적 기술이 강한 특정 부문에만 주력한다는 게 커다란 약점이다. 한국종자협회 소속 53개 가운데 자체 육종연구소를 운용하는 회사는 3~4곳에 지나지 않는데 그 가운데도 화훼를 육종하는 국내 기업은 아예 없다.
‘통일벼’로 상징되듯, 먹거리 증식을 위한 식량 작물 개발에만 주력했던 한국이 과수·화훼·약용 등 더 큰 부가가치를 낳는 비식량작물 개발에 나선 건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종자 가운데 비식량작물 종자도 25%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 10월 새로 개발한 국화 품종을 일본으로 시범수출하는 데 성공한 김현석 연구사(경북도농업기술원 구미화훼시험장)는 “국화 시장을 이끄는 네덜란드, 일본계 민간 회사들의 종자 자원이 한국 정부가 지닌 것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80~100년 된 외국과 이제 겨우 15년간 품종 연구에 나선 우리가 맞서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1125억원 규모의 국내 화훼 시장에서 장미, 국화의 국산 품종 보급률은 1%안팎이다. 나머지는 당연히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지난 9월 정부는 2015년까지 1조3300억원을 종자산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가운데 수입·개방 대비 또는 로열티 품종 대체 개발에만 2739억원, 순수 원예·과수 부문에 400억원 이상을 지원할 방침이다. 조은기 국장은 “온·난·한대 기후가 모두 나타나고 사계절이 뚜렷해 생물다양성이 동일 면적의 다른 나라보다 3~4배가 높다”며 “시작이 늦었을 뿐 기술과 환경은 뒤지지 않아, 국가 정책과 투자가 뒷받침되면 10년 안에 일본을 앞설 수 있다”고 의욕을 보였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화훼시장서 장미·국화 국산 품종 보급률 1%선
품종연구 80년 뒤져…정부, 10년간 1조 투자계획 “일본인 공대 교수가 한국에 와서는 자꾸 야산에 가자고 조른다는 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조은기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 연구개발국장은 지인한테서 이상한 말을 전해들었다. 이내 역추적이 이뤄졌다. 조사 결과 일본인 교수가 숨겨놓은 식물수집 전문가와 함께 국내 야생콩 종자를 채집하려던 사실이 확인됐다. 공동연구차 한국을 방문한 공대 교수의 또다른 신분은 ‘종자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2년 전의 일이다.
올 상반기 일본은 국내에서 재배·유통되는 딸기 품종에 대한 로열티로 60억원을 요구했다. 전체 시장의 85% 가량이 일본 품종인 탓이다. 반면 국내 품종은 10%(2005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독일계 장미육종회사 코로사는 농수산물유통공사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그해 11월 승소했다. 자사 품종을 무단으로 증식해 기른 장미를 화훼공판장에 경매·전시했다는 이유였다. 현재 국내 종자 시장의 대외 로열티는 200억원 규모(채소시장 포함)에 이른다. ‘총성없는 전쟁’이 치열하다. 식물의 ‘종자’를 둘러싼 전쟁에는 전선도 보이지 않는다. 종자가 곧 돈이니, 나라마다 ‘해적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 유럽 등 종자기술 선진국들은 이미 종자 채집과 신품종 개발 수준을 넘어 또다른 곳으로 전선을 넓혔다. 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식물추출물에서 신약·신물질을 개발하는 ‘2차 종자전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식물과 미생물을 포함한 전세계의 유전자원 시장을 연간 9천조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뒤늦게 전쟁에 뛰어든 우리나라는 이들을 뒤쫓느라 숨이 가쁘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 초저온저장실에서 5일 오후 한 연구원이 초저온보관장치에 보관된 영양체와 난저장종자자원을 살펴보고 있다. 수원/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종자가 국가산업도 바꾼다=말레이시아는 고무만 팔던 나라였다. 그러나 이젠 팜오일(과수)이 주요산업이다. 1970년대 중반 아프리카에서 채집한 팜오일 유전자원을 개량해 키가 작으면서도 기름 함량은 많은 품종을 개발했다. 현재 연간 10조원의 수익이 여기서 나고 있다. 관련 기술을 토대로 꾸민 자연생태 공원에서 연간 3조원의 관광 수입까지 올린다. 팜오일 산업이 없었다면 말레이시아는 1~2조원 정도의 수익에 만족하는 고무나라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달 초 말레이시아 쪽과 유전자원 교환 문제를 논의하고 돌아온 정혁 박사(한국생명공학연구원)는 “경제적으론 낙후됐지만 이 부문에선 깨어 있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나라마다 무한질주=조은기 국장은 2000년 미국 오레곤주의 한 유전자원연구기관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산간에서 자라는 토종 개암나무가 1㏊에 걸쳐 재배되고 있었는데 나무마다 적힌 ‘채집 장소’가 바로 한국의 봉화, 평양, 진안 등이었다. 채집 시기는 40~50년 전이었다. 미래 식량이나 바이오 에너지화가 가능한 ‘기름 작물’로 활용하기 위해 개암종자를 한국에서 가져다 40~50년 이상 재배·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 국장은 “우린 아직 이 작물에 관심도 없는데, (무단으로 가져간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정리해놓은 것을 보고 창피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토종 종자가 많지 않지만 이렇게 각국에서 수집한 종자를 포함해 식물유전자원 46만5천점(세계 1위)을 보존하고 있다. 최근 우리 농진청은 중국 쪽에 콩 종자를 상호교환해 연구하자고 제의했다.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산 콩은 중국 재래종과 한국의 재래종이 교배된 결과물이란 게 정설이다. 2만5천점의 거대 콩 종자군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이를 수락했다. 하지만 한해 10점 이하로 제한했다. 사실상 거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견제 때문에 “종자 수집이 거의 첩보 영화처럼 이뤄진다”고 안완식 박사(한국토종연구회 전 회장)는 말했다. 농림부의 한 고위간부는 일본의 공대 교수 사례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비공식적’ 수집 방식이 있다”면서도 더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세계의 11대 종자회사의 매출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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