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이야기
“4대강과 똑같아요. 거기는 물이 넘치지만, 나머지 지천은 다 마르는 그런 상황인 거죠.” 얼마 전 춘천 강원도청 앞 설악산 케이블카 취소 요구 노숙농성장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던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가 털어놓은 말이다. 그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며 4대강의 본류에 비유한 ‘거기’는 환경재단을, ‘지천’은 환경단체를 가리킨다.
환경 분야에 관심있는 기업이나 기관의 환경 관련 후원금이 환경재단으로 집중되면서 일선 환경단체들은 후원금을 모으기 더 어려워지고, 그렇게 후원금을 쓸어담은 환경재단이 환경단체들을 지원하는 데 소홀하다는 이야기는 환경운동 진영에선 ‘불편한 진실’ 같은 것이다. 아무리 환경에 관심이 많은 기업이라도 환경재단에 후원금을 내고 다른 환경단체를 또 지원해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 대표 말대로 “환경재단에 하면 끝”이기 쉽다. 환경단체들에서는 이런 상황을 불만스러워하면서도 환경 진영 내부 일이란 생각에 속만 끓일 뿐 외부에 드러내놓기는 조심스러워했다. 박 대표와 같은 주요 환경단체 대표가 언론을 상대로 “써도 좋다”며 작심하고 이 문제를 제기하기는 처음인 듯하다.
환경재단이 환경에 관심있는 개인이나 기업들과 일선 환경단체 사이에서 후원금의 ‘허브’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은 박 대표만의 생각은 아니다. ‘환경의 보호와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개인 및 단체의 활동 지원’은 14년 전 출범한 환경재단이 내건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환경재단의 활동을 되짚어보면 환경단체 지원은 우선순위에 들지 못했다. 환경재단은 뒤에서 환경운동을 돕는 역할에 머물기보다는 스스로 빛이 나는 자체 사업에 집중했다.
지난해 3월 환경재단 누리집에 공개된 2014년 ‘환경재단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환경재단은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47억5400여만원의 후원금을 받아 33억9200여만원을 각종 사업비로 썼다. 단일 사업으로 가장 많은 돈을 쓴 곳은 7억1000여만원을 투입한 ‘피스앤그린보트’ 행사였고 그다음으로는 4억4900여만원이 들어간 서울환경영화제 개최였다. ‘국내 엔지오 지원사업’ 항목으로 집행된 사업비는 6400여만원이었다. 전체 사업비의 2%가 채 되지 않는 ‘구색 맞추기’ 수준이다.
환경재단이 2005년부터 주최하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여덟차례 진행된 피스앤그린보트는 200만원 안팎의 비용을 낼 여유가 있는 참가자들이 일주일에서 열흘 남짓 크루즈선을 타고 동아시아를 여행하며 명사들의 선상 강연을 듣고 각종 문화행사를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환경재단의 홍보 문구대로 ‘아주 특별한 크루즈’ 사업임에 틀림없지만, 재단의 뿌리인 환경단체들이 메말라가는 것을 외면한 채 진행돼온 것을 지켜보는 마음이 개운치 않다.
김정수 선임기자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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