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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북극곰 ‘남극이’는 왜 대전에서 숨을 거뒀을까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7-08-03 10:14수정 2022-08-19 15:55

[더(the) 친절한 기자들]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 살던 북극곰 ‘남극이’가 지난 1월 숨을 거둔 사실이 1일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꽁꽁 언 빙하 위를 누비며 살아가야 할 남극이가 어쩌다 대전의 동물원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어야 했을까요. ‘더(the) 친절한 기자들’은 남극이의 죽음을 계기로 ‘전시동물’들이 동물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점을 짚고, 현행 ‘동물원수족관법’의 한계와 대안 등을 알아봅니다.

대전 오월드의 북극곰 남극이가 지난해 7월 동물사 안의 웅덩이에서 얼음덩어리를 붙잡고 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연합뉴스
대전 오월드의 북극곰 남극이가 지난해 7월 동물사 안의 웅덩이에서 얼음덩어리를 붙잡고 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연합뉴스

■ 얼음 껴안고 여름 버틴 남극이

남극이는 1985년 스페인의 한 동물원에서 태어나 2002년 대전으로 건너온 극지동물입니다. 남극이에게 15년 간의 한국생활은 곧 ‘더위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원래 살아야 할 북극과 한국의 여름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겁니다. 찌는 듯한 햇볕이 쏟아지는 동물사에서 남극이의 유일한 낙은 얼음덩어리와 얼린 과일·생선이었다고 합니다.

‘북극곰의 더위탈출? ‘남극이’는 여름을 싫어했다’에 따르면 남극이를 돌봤던 오월드의 박강필 사육사는 “남극이가 여름만 되면 너무 힘들어 했다. 매년 여름 우리도(사육사·수의사) 남극이 건강을 많이 걱정했다”고 전합니다. ‘살기 위해’ 얼음을 껴안고 버티는 남극이의 모습이 동물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겐 ‘여름철 이색 볼거리’였을 겁니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1일 남극이를 추모하는 성명을 내고 “열대성 기후를 가진 나라에서 북극곰이 전시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동물학대”라며 “세계적으로 북극곰의 전시는 금지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제 더 이상 극지방 해양동물의 수입과 전시를 금지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남극이의 죽음으로 이제 국내에 남은 북극곰은 경기 용인 에버랜드의 통키가 유일합니다. 동물단체들은 통키의 열악한 사육환경도 비판해왔습니다. 케어 측은 “지난달 11일 에버랜드를 방문조사 했을 때 통키가 30도가 넘는 한낮 폭염 속에서 물 한방을 없는 방사장에 홀로 방치돼 있었다”며 “(3일 후) 14일 2차 사육환경 조사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육장의 물을 발목 깊이로 채워놓았지만 여전히 북극곰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고발했습니다. 지난달 31일에는 “지금보다 나은 사육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세계 유수의 동물보호단체나 기관으로 보내달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래에 편지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재용 부회장님. 옥중에 계심에도 이렇게 서한을 보낼 수밖에 없음을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략) 올해 통키의 나이는 23살로 북극곰의 평균 수명인 25살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고령으로 접어든 통키의 건강상태는 점점 악화될 것입니다. 통키의 영상을 확인한 영국의 수의사 사만다 린들리는 통키의 사육환경을 한마디로 ‘재앙’으로 일축하며 그속에서 통키의 삶은 형벌과 같은 고통일 것이라고 개탄했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이재용 부회장님과 삼성 에버랜드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통키에게 지금보다 나은 사육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세계 유수의 동물보호 단체나 기관으로 보내주기를 정중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에버랜드의 북극곰 통키를 위한 서한

■ 남극이는 어떻게 동물원에서 자랄 수 있었나

남극이와 통키의 고향은 극지방입니다. 영하 40도의 강추위와 강풍을 견디며 살아야 북극곰에게 30도를 훌쩍 넘는 한국의 폭염은 고통이었을 겁니다. 남극이는 스트레스가 극심한 동물들이 보이는 정형행동(목적없는 반복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박소연 케어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고릴라, 코끼리, 북극곰, 돌고래 4종을 전시 동물로 적당하지 않은 동물로 꼽는다”며 “이번 기회에 일단 이 4종을 전시하는 것부터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남극이나 통키와 같은 극지동물이 동물원에 들어오는 걸 막을 순 없었을까요?

동물단체는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19대 국회를 어렵사리 통과한 ‘동물원수족관법’(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올해 5월 30일부터 처음 시행됐지만 선언적인 의미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처음 발의한 ‘동물원법 제정안’보다 한참 후퇴한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겁니다. 현행법은 “동물원과 수족관을 정부가 관리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이 법만으로는 “동물원이나 수족관의 사육환경을 개선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입니다.

‘동물원수족관법’ 6조는 “동물원 또는 수족관을 운영하는 자는 보유 생물에 대하여 생물종의 특성에 맞는 영양분 공급, 질병 치료 등 적정한 서식환경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서식환경을 바꿀 수 있도록 동물별 사육환경이나 사육시설 면적 기준 등을 강제하는 내용은 빠져있습니다.

법을 위반해도 처벌수준이 낮습니다. 동물을 학대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하지만 다른 조항을 어기면 과태료 처분만 받습니다. 동물보호단체는 처벌기준 상향, 환경부 장관의 사육부적합종 지정 등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지금 ‘동물원법’엔 어떤 동물을 전시하면 안 된다는 내용 자체가 없어요. 사육환경에 대한 조항도 ‘권고’ 수준이죠. 1991년 처음 동물보호법을 만들었을 때처럼 ‘동물원법이 있다’는 선언적인 의미 정도입니다. 돌고래나 북극곰처럼 동물원에서 사육하기 어려운 동물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예요. 저희도 (해당 동물의) 새로운 수입을 금지하자는 캠페인을 하려고 해요”-박소연 케어 대표

2012년 11월 강원 원주 치악산 드림랜드에 있던 호랑이 크레인. 안면기형 때문에 얼굴이 부은 것처럼 보인다. 남종영 기자
2012년 11월 강원 원주 치악산 드림랜드에 있던 호랑이 크레인. 안면기형 때문에 얼굴이 부은 것처럼 보인다. 남종영 기자

■ 한국, ‘전시동물’ 논의 초보단계지만 ‘긍정적’인 전망도

외국은 어떨까요. 독일, 영국, 스위스 등 대표적인 ‘동물복지 선진국’에선 이미 북극곰 전시를 중단했습니다. 유럽연합(EU)은 동물에게 △배고픔·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부상·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공포·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5가지를 보장하는 것을 동물복지의 기본조건으로 정의하고 있죠. 동물원에서 살아가야 하는 북극곰은 이 5가지 자유를 누릴 수 없다고 판단한 것 아닐까요. 싱가포르 동물원도 2006년 북극곰 ‘이누카’의 죽음 이후로 더 이상 북극곰을 전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동물원에서 고통받는 동물이 비단 극지동물 뿐은 아닙니다. 지난달 25일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호랑이 ‘크레인’도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겨레>의 지난달 29일 보도 호랑이 ‘크레인’은 어떻게 세상을 바꿨나”에 따르면 동물원의 근친번식으로 태어난 크레인은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안면에도 기형이 있었죠. 서울대공원에서 ‘인기 동물’이 되지 못했던 크레인은 결국 드림랜드로 이송됐다가 동물단체의 도움으로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결국 동물원에서 눈을 감아야했죠.

영국이나 독일 등과 비교하면 ‘전시동물’에 대한 한국의 논의는 아직 초보 단계입니다. 그럼에도 동물단체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습니다.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나면서 ‘동물권’ 혹은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도 좋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기견 ‘토리’를 입양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전시 동물과 관련된 동물단체의 질의에 “돌고래 전시와 쇼는 치료·회복 과정에서만 가능하도록 한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반려동물 다음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게 전시동물이예요. 최근에 전시동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서 저희도 놀랐어요. 관람객 의식 수준이 높아지니 동물원의 동물들도 불편하게 바라보거든요. 동물원이 즐겁지만은 않은 공간이 돼버리는 거에요. 동물원도 이제 (달라진)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겠죠”-박소연 케어 대표

‘제2의 남극이’를 막는 발걸음은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습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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