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는 인턴과 전공의 과정을 거쳐야 자격이 주어진다. 전공의들은 대부분 둔 20대 중반에서 30대에 이른 성인이지만, 일부 선배 의사 혹은 일부 교수들의 폭언·폭행 등 비인격적 대우를 겪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전공의들이 환자들의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주먹·발길질에 툭하면 막말…환자 앞에서도 버젓이
‘의사 선생님들은 맞으며 배운다.’
서울 한 대학병원 외과 3년차로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ㅇ아무개 전공의(레지던트)는 지난 8월 교수 방으로 불려가 교수에게 주먹으로 여덟 차례 머리를 얻어맞았다. 일주일 뒤에는 수술장에서도 발로 걷어차였고, 수술에 쓰이는 흡입기구로 얻어맞기도 했다. 또 얼마 되지 않아 환자와 보호자가 보는 앞에서도 발로 걷어차였다. “쓰레기 같은 놈, 미친 ××” 같은 막말도 따라붙었다. 수술받은 환자 상태가 악화됐다는 게 이유였다. 견디다 못한 그는 “한 아이의 아빠인데 …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며 대한전공의협의회 민원 게시판에 자신의 사연을 올렸다.
전공의들이 매를 맞으면서 수련받는 게 비단 이 병원만은 아니다. 최근 경기도 한 대학병원에선 교수의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에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반발했다. 지난 9월, 이 병원 소아과 병실에서 ㄱ아무개 전공의(3년차)에게 “개새끼! 니 머리에는 ×만 찼냐”는 교수의 느닷없는 폭언이 날아들었다. 이 교수는 평소에도 전공의들에게 폭언·폭행을 일삼았다. 그 며칠 전에는 2년차 전공의가 거친 욕을 듣고 사표를 쓰기도 했다. 해당 교수는 지난해에도 전공의 폭행으로 물의를 빚어 사과까지 했지만, 그의 ‘폭력’은 잠시 중단됐을 뿐 올해 들어 다시 시작됐다. 해당 전공의들의 집단민원을 접수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17일 이 병원과 해당 교수를 상대로 진상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전공의협의회에 인터넷이나 전화로 받은 폭력 피해 신고는 올해 들어 20건에 이른다. 교수가 전공의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폭언을 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전공의 선후배 사이는 물론, 간호사나 다른 직종에 대한 폭행 사건도 눈에 띈다. 그러나 이처럼 밖으로까지 알려지는 ‘폭력’은 극히 일부다. 정형윤 전공의협의회 간사는 “병원에서 전공의가 매맞고 지내는 일을 워낙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라며 “신고나 민원이 제기돼 밖으로 알려지는 경우는 전체 폭력 실태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수련을 받아야 하는 ‘약자’ 처지 피해자나, 외부에 폭력행위가 알려져 좋을 일 없는 병원 쪽 두루 입을 다물기 때문이다.
의식 있는 일부 의사들이 “부끄러운 전통”을 고쳐보려 애쓰지만, 뿌리깊은 ‘폭력 관행’에 맞서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임기영 아주대 의대 교수팀이 전공의·개원의 972명을 대상으로 벌인 2004년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의 14.2%는 폭행을, 55.0%는 폭언을 당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대다수는 “병원에 이를 막을 공적 기구가 없다”고 답했다. 이학승 전공의협의회 대표도 “병원 안 폭행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며 “제도·구조적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의료현장 폭력추방 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이성낙 가천의대 총장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에선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폭력의 피해는 당사자인 의사들만 아니라 종국적으로 환자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전공의 폭력실태 설문조사
의식 있는 일부 의사들이 “부끄러운 전통”을 고쳐보려 애쓰지만, 뿌리깊은 ‘폭력 관행’에 맞서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임기영 아주대 의대 교수팀이 전공의·개원의 972명을 대상으로 벌인 2004년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의 14.2%는 폭행을, 55.0%는 폭언을 당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대다수는 “병원에 이를 막을 공적 기구가 없다”고 답했다. 이학승 전공의협의회 대표도 “병원 안 폭행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며 “제도·구조적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의료현장 폭력추방 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이성낙 가천의대 총장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에선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폭력의 피해는 당사자인 의사들만 아니라 종국적으로 환자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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