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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떠나는 이들을 향한 예의

등록 2021-01-30 10:25수정 2021-01-30 10:48

[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⑰코로나 시대의 진정한 애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원장님, 임종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연락 주세요. 그런데 새벽이라면 제가 바로 연락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2년째 계약 의사로 순회 진료를 하는 요양원에서 어르신의 임종을 함께할 수 있을지 문의 주셨다. 지금 코로나 시기라 보호자가 장례 계획이 없고 바로 화장을 하기로 했다고 하여 어르신을 진료하던 의사인 내게 사망선고를 부탁하신다. 이 요양원은 10여분이 지내는 작은 공동체로 어르신들, 직원들 모두 나를 친절히 맞이해주셔서 갈 때마다 기분 좋고 힘을 얻는 곳이다.

수희(가명) 어르신은 변비로 고생하셔서 변비약을 종종 드리다가 최근 혈압이 높아 혈압약을 조금 처방했었다. 90살이 훌쩍 넘어 누워서 지내며 의식이 명료하지 않아 임종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최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아시고 원장님이 미리 나에게 임종을 언급하신다.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지만 혹시라도 수희 어르신이 가실 때 그 길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다. 이전에는 희주(가명) 어르신이 내가 갈 때마다 말씀도 잘하시고 약에 대해서도 물어보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하다가 갑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돼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급히 입원하신 적이 있었다. 희주 어르신이 돌아가시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회복하여 요양병원에 머무르고 계신다.

열흘쯤 지났을까. 이제 막 씻고 잠을 청하려던 밤 11시께 요양원 원장님께 연락이 왔다. 마침 깨어 있어 다행히 바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원장님, 수희 어르신이 임종이 임박한 거 같은데 와주실 수 있을까요?”

“네, 지금 바로 갈게요.”

바로 택시를 타고 그리 멀지 않은 요양원에 들어섰다. 몸이 아직 따듯하다. 진찰을 해보고 심폐소생술을 하였다. 결국엔 사망선고를 하고 다시 병원에 들러 서류를 준비했다.

“늦은 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제가 시간을 맞췄네요. 고맙습니다.”

요양원 여러 직원들이 수희 어르신의 가시는 길을 함께했다. 방문 진료를 하며 임종을 종종 마주한다. 가족, 친지, 이웃이 함께 모여 임종을 하기도 하고 쓸쓸히 홀로 마지막 숨을 쉬기도 한다. 분명 며칠 전까지 찾아뵈었는데 어디선가 누구도 모르게 사망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듣기도 한다. 코로나 시기라 어떤 분들은 제때 이송을 하지 못해 응급차에서 사망하기도 하고 코호트 격리 중 시설에서 사망하기도 한다. 임종 소식은 언제나 마음이 아프지만 코로나 시기라 그런지 허망함을 더 크게 느낀다. 망자에게도 코로나 검사를 하는 병원이 이해가 되면서도 차갑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시기라 장례식조차 유족들에겐 부담이다. 장례식 소식을 전하기도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 하지만 단체 메시지 창에 끝없이 올라오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문장은 뭔가 부족한 애도로 느껴진다.

코로나 시기라도 가는 이에게 충분한 애도를 보냈으면 좋겠다. 모든 면회가 금지되어 격리 상황이나 다름없는 요양시설의 어르신들이 혹시 임종을 앞두고 유족들과 삶을 정리하고 애도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할 수는 없을까? 최근 이해할 수 없는 사망 소식들에 마음이 심란하다. 가는 이를 애도하며 남은 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픈 어르신들이 남은 여생을 보내는 요양시설이 안온한 공간이 되어 삶의 마지막이 은폐되지 않고 따듯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바꾸는 일이다.

더 나아간다면 아파도 살던 곳에서 폐쇄 격리되지 않고 살아가고 또 이웃들 곁에서 임종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감옥과 같은 시설은 이제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이 고난 끝에 시설화된 사회를 돌봄 중심 사회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를 아프게 했던 감염병을 진정 극복하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떠난 이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일이 아닐지. 남은 인류가 코로나 시기의 생을 마감한 이들을 진실로 애도할 수 있길 바란다. 수희 어르신의 명복을 빈다.

찾아가는 의사 홍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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