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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함께 살자’던 약속…대통령님, 벌써 잊으셨나요?

등록 2013-05-06 20:18수정 2013-05-07 15:27

한상균씨
한상균씨
송전탑 농성 168일째…한상균 쌍용차 전 지부장의 편지
까치도 안사는 15만볼트 송전탑 위
일교차 변덕에 수개월째 감기 몸살
몸보다 힘든 건 사회로부터 고립감

15만4000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의 생활은 외롭습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은 ‘저 위에서 뭘하고 보낼까’라는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지금 저와 함께 생활하는 복기성 동지는 거의 말이 없는 하루를 보냅니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졌습니다. 사회로부터의 고립감이 점점 개인에게까지 파고들어온 느낌입니다. 좁은 공간에 있다 보니 근육이 약해져 오래 서 있는 것조차 힘듭니다. 수개월째 달고 사는 감기는 떨어질 생각을 안 합니다. 정신적·육체적 괴로움이 우리에게서 말을 빼앗아 갔습니다. 요즘 봄이 만드는 밤낮의 온도차는 우리를 더 힘들게 합니다. 아침과 밤에는 겨울처럼 춥고 한낮의 봄 햇살은 비닐 천막 안을 말 그대로 비닐하우스로 만들어 버립니다. 기온이 올라가면 더 버티기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함께 살자! 해고는 살인이다!

4년 전 가정의 달.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억울한 대량해고에 맞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외쳤던 구호입니다. 쌍용차가 기획하고 이명박 정부가 묵인·방조·공모한 기술유출과 파업유도, 회계조작, 기획부도, 굴욕적 사대외교, 살인진압에 의해 3000명의 노동자가 길거리로 쫓겨난 지 4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갈등의 대명사가 돼버린 쌍용차 사태의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은 더디기만 합니다.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되는 사회적 문제이기에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청문회를 개최하였고 여야 의원 모두가 잘못된 정리해고였음을 확인했으나 뒤따라야 할 당연한 후속 조처인 국정조사는 실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표를 얻으려 대한문, 송전탑, 와락치유센터를 찾아온 여야 정치인들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국정조사를 통한 사태 해결을 약속했으나 선거가 끝나자 약속은 ‘밑 닦는 휴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국회와 정부, 쌍용차 회사는 해고 노동자의 절규에 귀 기울이고 해법을 내놔야 합니다. 대한문 분향소를 철거한들 이 시대의 아픔과 노동자의 자존심까지 걷을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송전탑에 오르신 이용훈 주교님의 “죽음을 막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다”라는 말씀에 이제는 화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치유해야 할 대상은 쌍용차 노동자만이 아닙니다. 실시간 중계된 쌍용차 공장의 경찰특공대 살인진압 작전을 지켜본 이 시대 직장인 모두가 큰 병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할지라도 나 또한 찍소리도 못하고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트라우마는 국가가 나서서 치유해야 합니다.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왼쪽)과 복기성 쌍용차 비정규직 수석부회장이 30일 오후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인근 송전탑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평택/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왼쪽)과 복기성 쌍용차 비정규직 수석부회장이 30일 오후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인근 송전탑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평택/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남편·자식·아빠 도리 못한채 반년
국정조사 요구 ‘대답 없는 메아리’
절망에 찬 해고자는 눈물만 납니다

파업을 이끈 당사자로서 파업에 대한 비판도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판은 피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왜 투쟁할 수밖에 없는지를 우리 사회가 냉철하게 반성하고 조속히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쌍용차 사태는 계속될 것입니다. 열악한 사회안전망에다 합법적 파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정리해고가 노동탄압의 도구가 돼 생존권을 강탈한다면 그 누가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법과 질서를 앞세우기 전에 관련 법부터 시급히 고쳐야 합니다.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서는 경제민주화도, 사회 양극화 해소도 구호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아픈 상처를 간직한 ‘함께 살자’ 외침이 4년 뒤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킨 핵심 구호가 된 것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하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까치도 살지 않는다는 송전탑에 올라야 했습니다. 공장을 바라보며 겨울을 보냈고 벌써 반년이 돼 갑니다. 어머님과 장인께서 큰 수술을 했지만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아빠·자식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마저 사치가 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가 평범한 일상을 찾는 것이 참으로 힘이 듭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24명 동지의 아이들은 아빠·엄마의 빈자리 속에 가정의 달 5월을 맞는데… 눈물만 납니다.

반드시 치유해야 할 상처들을 이 사회가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됩니다. 쌍용차도 굳게 잠근 대화의 문을 열고 희망을 얘기해야 합니다. 절망·죽음·먹튀로 각인돼 있는 쌍용차가 아니라 지난날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희망의 공장,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쌍용자동차가 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온 국민과 함께 보고 싶습니다.

달빛이 내려앉은 공장을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대지의 초록보다 간절한 바람이 더욱 자라길 바라면서….

한상균/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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