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2시에는 시민사회단체 69곳이 모인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구광모 회장과 면담을 요청했지만, 보안요원들이 출입을 막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트윈타워분회 청소노동자 30여명은 지난 16일부터 서울 여의도동 엘지트윈타워 로비에서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30일 이곳 청소노동자 80명 전원이 해고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해고 예정일은 12월31일이다.
해고를 통보한 업체는 지수아이앤씨(Inc). 엘지의 계열사이자 건물관리 계약을 맺은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에서 청소 업무를 재하청받아 운영하는 회사다. 구광모 엘지 회장의 고모 구훤미·구미정씨가 지수아이앤씨의 지분을 50%씩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청소품질 저하를 이유로 지수아이앤씨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지수아이앤씨도 곧바로 노동자들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노동자들은 용역업체 변경이 노조 파괴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10월 민주노총에 가입하자 ‘노동조합 죽이기’에 나섰다는 것. 대개 업체가 바뀌어도 청소노동자 고용은 승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노동자들은 곧바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실제 새로 청소업무를 맡은 백상기업은 2017년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3건의 청소계약 때 이전 업체 청소노동자를 전원 고용승계했지만, 이번엔 고용승계 계획이 없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사업장 중 2008년 성신여대와 2011년 홍익대를 제외하고는 업체 변경을 이유로 집단해고를 벌인 사례가 전무하다. 당시 두곳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해고를 철회했다. 최근 2년 동안 용역업체가 바뀐 11곳 역시 전원 고용승계가 이뤄졌다. 장성기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장은 “용역업체도 숙련노동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노조가 없는 곳도 대부분 고용승계가 이뤄진다. 이런 집단해고는 정말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입주사 고객 만족도 하락과 임직원 불편 접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약을 종료하기로 지수아이앤씨와 합의했다”며 “지수아이앤씨는 노조와 20여차례 교섭을 진행했으나, 노조 측이 정년 70살 연장(현재 정년 60살) 및 회사의 인사권 및 경영권에 대한 수용 불가능한 항목을 요구해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법적 정년은 60살이지만, 건강 상태와 업무수행 능력을 고려해 65살까지 1년 단위 계약을 연장했고 65살이 되는 직원들과는 노조 활동과 무관하게 계약을 종료하는 것”이라며 “65살 이하인 분들은 다른 사업장에 우선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소노동자 30여명이 해고에 맞서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여의도 엘지트윈타워 전경.
■ 폭언, 갑질, 갈취…“우리는 현대판 노예”
그러나 노조의 입장은 다르다. 고객 만족도 등의 이유로 계약해지를 했다는 사쪽의 주장에 대해 노조는 “한마디로 엘지 계열사가 항의하고 엘지 계열사가 해고하는 구조”라고 반박했다. 70살로 법적 정년 연장을 요구했다는 내용과 관련해서도 “다른 곳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부분을 가져온 것이고, 회사에 무조건 수용을 요구한 것도 아니다. 협의 가능하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반박했다. 전환배치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고 노조와 대화는 거부한 채 노동자 개개인에게 회유하듯 접근하고 있다”며 “원하청 계약서에 고용승계를 포함하는 등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게 저희의 입장”이라고 거듭 밝혔다.
청소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했던 주차장 팔레트 아래(왼쪽)와 전화기 단자함 천장.
노조 때문에 해고 위기에 몰렸다지만, 노동자들은 노조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노예처럼 일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을 힘들게 한 건 청소가 아닌 관리자의 횡포였다. 고된 작업 때면 “미친○” “○○○들아. 빨리빨리 안 해” 등 욕설이 쏟아졌다. 7년차 유제순(63)씨는 “예전 감독은 말끝마다 ○○○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노동자들은 “소장이 조회 때마다 ‘당신들은 하루살이 인생이다. 나가고 싶으면 당장에라도 나가라’거나 ‘너희들은 일회용’이라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이들에겐 휴식도 사치였다고 한다. 지하 3층에 휴게실이 있지만 근무시간엔 문이 잠겼다. 노동자들은 늘 감시당하는 신세였다. 화장실 변기, 전화기 단자함, 지하 주차장 팰릿(팔레트) 아래에서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는 게 노동자들의 하소연이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관련기사 :
얼음장 로비 바닥서 지샌 아침…“지금, 해고는 죽으라는 말
(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976478.html)
▶관련기사 :
“노조서 처음 사람대접 받았는데…해고땐 한달 생계도 위태”
(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976486.html)
▶관련기사 :
추운 거리서 연말 맞는 노동자들 더 있다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64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