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밤 10시께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트윈타워 로비에서 잠을 자고 있다.
고난은 평등하지 않다. 누군가에겐 거리두기로 쓸쓸한 연말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갈림길에 떠밀린 가혹한 겨울이다. 여기 12월31일자로 집단해고될 위기에 처한 청소노동자들 80여명이 있다. 해고 통보에 맞서 파업 중인 이들의 요구는 소박하다. 쓸고 닦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새해를 맞고 싶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위험을 무릅쓰고 싸움에 나선 서울 여의도동 엘지(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농성장에 기자가 1주일 동안 함께했다. 그들과 먹고 자며, 청소노동자들의 벼랑 끝 절규를 들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트윈타워분회 청소노동자 30여명은 지난 16일부터 서울 여의도동 엘지트윈타워 로비에서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30일 이곳 청소노동자 80명 전원이 해고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해고 예정일은 12월31일이다.
해고를 통보한 업체는 지수아이앤씨(Inc). 엘지의 계열사이자 건물관리 계약을 맺은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에서 청소 업무를 재하청받아 운영하는 회사다. 구광모 엘지 회장의 고모 구훤미·구미정씨가 지수아이앤씨의 지분을 50%씩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청소품질 저하를 이유로 지수아이앤씨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지수아이앤씨도 곧바로 노동자들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노동자들은 용역업체 변경이 노조 파괴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10월 민주노총에 가입하자 ‘노동조합 죽이기’에 나섰다는 것. 대개 업체가 바뀌어도 청소노동자 고용은 승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노동자들은 곧바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장성기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장은 “용역업체도 숙련노동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노조가 없는 곳도 대부분 고용승계가 이뤄진다. 이런 집단해고는 정말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입주사 고객 만족도 하락과 임직원 불편 접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약을 종료하기로 지수아이앤씨와 합의했다”며 “지수아이앤씨는 노조와 20여차례 교섭을 진행했으나, 노조 측이 정년 70살 연장(현재 정년 60살) 및 회사의 인사권 및 경영권에 대한 수용 불가능한 항목을 요구해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65살 이하인 분들은 다른 사업장에 우선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의 입장은 다르다. 고객 만족도 등의 이유로 계약해지를 했다는 사쪽의 주장에 대해 노조는 “한마디로 엘지 계열사가 항의하고 엘지 계열사가 해고하는 구조”라고 반박했다. 70살로 법적 정년 연장을 요구했다는 내용과 관련해서도 “다른 곳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부분을 가져온 것이고, 회사에 무조건 수용을 요구한 것도 아니다. 협의 가능하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반박했다. 전환배치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고 노조와 대화는 거부한 채 노동자 개개인에게 회유하듯 접근하고 있다”며 “원하청 계약서에 고용승계를 포함하는 등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게 저희의 입장”이라고 거듭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기사 :
엘지트윈타워만 왜…청소용역 바뀐 뒤 고용승계 거부 이례적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976474.html)
▶관련기사 :
“노조서 처음 사람대접 받았는데…해고땐 한달 생계도 위태”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976486.html)
▶관련기사 :
추운 거리서 연말 맞는 노동자들 더 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6479.html)
“제가 복장부터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류한승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은 코트 입은 기자를 보자 옷 이야기부터 꺼냈다. 20일 아침 8시30분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엘지트윈타워 앞 천막 농성장에서 만난 그는 발목까지 덮을 듯한 검은 롱 패딩 차림이었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입김이 뿜어져 나올 날씨였다.
류 부장이 건넨 조끼부터 받아 입었다. 공공운수노조라는 글씨가 왼쪽 가슴팍에 박혀 있었다. “방송국 카메라가 몇번 왔는데 (회사 쪽에서) 취재를 막는 경우가 있어서요.” 류 부장과 함께 트윈타워 로비로 들어갔다. 농성장에 모인 노동자들에게 공공운수노조 선전부장이라고 소개했다. 트윈타워에서 보낼 1주일의 시작이었다.
농성장을 찾은 일요일은 트윈타워에 방문객이 거의 없는 날이었다. 바닥의 차가운 냉기가 올라왔다. 대리석 바닥은 얼음장 같았다. “평일 주간은 난방을 하는데, 오늘은 그것도 없어서 더 추울 것”이라고 했다. 다들 추위에는 이골이 난 듯 보였다. 9년차인 김영례(62)씨는 “아들에게 ‘혹한기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하니 ‘60대에 누가 혹한기 훈련을 하느냐’며 걱정하더라”고 나직이 말했다.
추위가 두려운 건 낮보다는 밤이고, 밤보다는 새벽이었다. 은빛 돗자리를 2개 겹쳐 깔고 그 위에 침낭을 하나 더 깔았다. 그 위에 침낭 하나를 덮고 자리에 누웠다. 잘 때 입으려고 챙긴 털옷에 노조 상근자가 건넨 패딩을 입었다. 침낭 속에 누워 천장을 보는데, 논산훈련소에서의 첫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새벽이면 떨어지는 기온 탓에 낯선 환경이 더 두려웠다.
취재 첫날인 20일 저녁 9시께 자리에 누워 바라본 트윈타워 로비 천장의 모습.
추위만 문제가 아니었다. 트윈타워 로비의 화려한 조명은 밤늦은 시간까지 꺼지지 않았다. 눈이 아파 잠을 청하기 힘들었다. 여분으로 챙겨둔 검은색 마스크를 꺼내 눈까지 마스크로 가렸다. 새벽 4시께까지 뒤척였다. 얼굴까지 침낭을 덮었지만 찬바람을 막기엔 속수무책이었다. 아침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농성장의 1주일은 마스크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24시간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 고리가 귀 위쪽 살을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취재 사흘째부터 통증과 함께 피가 나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없었다.
노동자들이 직접 그림일기로 표현한 농성장의 밤 풍경.
새벽 추위에 6시면 다시 잠에서 깼다. 차마 침낭 밖으론 나오지 못하고 몸을 웅크렸다. 농성장 일과는 아침 7시30분 출근 선전전으로 시작됐다. 아침 선전전-아침식사-조별 회의-점심 선전전-점심식사-교육-집회-저녁 선전전-저녁식사 순서로 이어지는 단순한 일정이었다.
농성장에도 분명 일상은 있었지만, 돌발 상황도 종종 일어났다. 트윈타워 곳곳에 24시간 상주하는 보안요원과 충돌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트윈타워는 동관-로비-서관으로 이어지는 구조인데, 농성자들은 그룹 임원들이 근무하는 동관 쪽으로 가려다 보안요원과 충돌하곤 했다. 높으신 분들의 이동 가능성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청소노동자의 시위는 허용되지 않았다. 보안요원들이 혼자 움직이는 노동자들의 동관 출입마저 막아선 이유이기도 했다.
21일 점심으로 나온 트윈타워 구내식당의 갈릭비프볶음밥. 가격은 5500원이다. 한끼 연대에 참여하면, 노동자들에게 이 밥상을 후원할 수 있다.
사쪽은 청소노동자들이 동관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것도 막았다. 엘리베이터에 보안요원이 상주했고, 노동자들이 오면 엘리베이터 작동이 멈췄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보안요원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 이용 정지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엘리베이터조차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사쪽의 조처에 60대 노동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밤이라고 평화롭진 않았다. 보안요원들이 잠든 노동자들의 모습을 촬영하다 들켰고, 이를 증거로 남기려는 노동자들과 그들을 막으려는 보안요원이 대립했다. 밤중에 대체인력이 투입됐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파업 중 대체인력 투입은 불법이다.
22일 밤 11시께 유복남씨가 멈춘 엘리베이터 앞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있다.
고난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일까. 힘든 일정에도 노동자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최명자(61)씨는 집회 때 “구광모 회장님, 고용승계 해주시길 바란다”는 발언으로 시작해 마지막엔 “고용승계 해주시옵고, 내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라고 발언을 끝냈다. 일부 노동자들은 “투쟁” 대신 “아멘”을 외쳤다. 작은 웃음이 새 나왔다. 최씨는 “중간에 실수로 ‘아버지’도 외쳤다. 내가 지금 그만큼 간절해서, 자꾸 기도가 나온다”고 말했다.
정양순(61)씨는 이번 파업 농성을 계기로 “내 인생을 내가 알아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가족들이 걱정하고 반대하더라도 끝까지 농성하겠다는 각오다. “솔직히 우리는 지금까지 다 가족만 위해 살았어요. 근데 이제 나는 나대로 인생을 살고 싶어요. 그래서 이 농성 하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어서, 나도 내 주장대로 살고 싶어서요. 예전에는 솔직히 나도 노조에 대해 별로 안 좋게 생각했어요. 근데 노조는 필수예요. 지금까지 너무 모르고 살아서 더 분해요.”
박소영 분회장이 받은 문자 중 일부와 청소노동자들이 트윈타워 로비에 붙여둔 편지.
민경남(60) 사무장은 요즘 이 싸움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동료들에게 “나 하나의 힘으론 못 하지만, 우리가 뭉쳐서 이렇게 해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다. 사실 그는 처음엔 노조에 별 관심이 없었다. “머릿수나 채우자”는 생각이었다. 지난 10월 비정규직철폐 전국노동자대회 전까지는 그랬다. “어쩌다 마이크 잡고 섰는데, 100명 정도 되는 사람 앞에서 말을 하려니 그냥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고.” 그는 그때 서러움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꼈다. “식당 왁스 작업 하는데, 굳을까 봐 막 다그치듯 정말 콩 볶듯이 하는데…, 끝나고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빵 쪼가리에 우유 하나 던져주고. 내가 그걸 받아먹은 게 너무 서러웠어요. 내가 원래 정말 약해서, 마음이 약해서. 근데 요즘 노조 하면서 담대해지는 걸 느껴요. 저번엔 우리 조합원 앞에서 발언하는데, 안 떨렸어. 내 곁에 서울역에서 봤던 그 사람들, 안 보이는 더 많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우리요? 여기 엘지 빌딩이잖아요. 엘지 직원이죠.” 성탄절 아침 9시께 트윈타워 로비로 들어오려는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를 막아서던 보안요원이 소속을 묻는 말에 내놓은 답이었다. 아마 그는 엘지가 아닌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엘지에서 일하면 엘지 직원’이라는 보안요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용역업체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길게는 10년을 일한 일터에서 쫓겨날 순 없다”는 청소노동자의 요구는, 바로 그 보안요원이 던진 말과 다르지 않았다.
등산과 꽃구경 사진으로 가득했던 이성희(63)씨의 휴대전화 사진첩이 점점 노동조합 사진으로 채워지고 있다.
농성장은 춥고 바람이 불었지만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이 외롭지는 않았다. 트위터에서는 트윈타워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구내식당 식권값인 5500원을 후원하는 ‘한끼 연대’가 널리 퍼졌다. 지난 17일 오후 2시에 올라온 연대 요청은 2천번 넘게 리트위트 됐고, 27일 오전 기준 후원금이 2500만원 넘게 모였다. 서명 요청에도 1주일 만에 1만4천명이 넘는 시민이 서명했다.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9시 뉴스’에 농성 소식이 나왔는지가 중요했던 60대 노동자들은 이제 “트위터를 깔아달라”며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엘지 직원들의 소박한 연대도 이어졌다. 박소영(65) 트윈타워 분회장의 휴대전화로 엘지 직원들의 응원 메시지가 날아들었고, 같은 층에 근무하던 직원들이 알아보고 달려와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각종 음료수와 후원금 성금도 들어왔다. 20일 밤 11시께, 급하게 동관으로 향하던 한 직원이 곤히 잠든 조합원들을 발견하곤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들고 지나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