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 시위가 확산되면서 기존의 안티조선 운동이 조중동 반대 운동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조중동 왜곡보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촛불집회 왜곡보도를 사죄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촛불집회 현장서 평생구독거부 확산
시민단체 운동이 소비자 주도로 진화
시민단체 운동이 소비자 주도로 진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촛불집회에 나온 젊은 엄마가 조중동 평생구독거부 용지에 서명을 한다. 중고생들이 “조중동은 찌라시”를 외쳐대고, 누리꾼들은 조중동에 광고를 낸 업체에 항의전화를 한다.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분노하는 촛불집회를 계기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반대하는 운동이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다. 과거 ‘안티조선’ 운동을 주도했던 최민희 전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사무총장은 “10년 동안 해도 안 되던 일이 순식간에 폭발할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안티조선 운동이 진화하는 것일까? 지금의 조중동 반대운동은 안티조선 운동과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른 걸까? ■ 안티조선운동의 성과와 한계 안티조선 운동은 1998년 <월간조선> 11월호에 실린 최장집 고려대 교수 사상검증 기사에서 비롯됐다. 기사를 쓴 이한우 기자는 <인물과 사상>에서 자신의 기사를 비판한 강준만 전북대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자 홍세화·진중권씨 등 진보적 논객들이 ‘나를 고소하라’며 저항했고, 2000년 9월, 민언련 등 72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조선일보 반대 시민연대’(조반련)가 출범하면서 본격화했다. 지식인 1576명과 시민단체 활동가 1151명은 조선일보 기고와 인터뷰 거부에 서명했고, 사무금융연맹, 보건의료노조, 민주택시연맹, 전교조 등 각계의 조선일보 구독거부 선언이 이어졌다. 그러나 2005년께부터 진보·개혁 진영이 노무현 정부와의 관계 설정을 놓고 우왕좌왕하면서 안티조선 열기도 식어갔다. 김유진 민언련 사무처장은 “진보·개혁 운동이 퇴조하면서 안티조선운동의 대중적 역량도 힘이 빠졌다”며 “이런 가운데 언론매체를 활용해야 하는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이 조선일보 취재거부 운동에서 하나 둘씩 발을 뺐다”고 전했다. ■ 무엇이 다른가 안티조선운동이 이념 문제로 촉발돼 시민단체가 주도했다면 조중동 반대운동은 국민 건강권에서 시작된 자발적 운동이다. 미디어비평가 백병규씨는 “과거 한국방송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이나 안티조선운동과 달리 시민들의 자각에 의한 최초의 대중적 언론운동”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자기 주장이 강한 10~20대가 실천적이고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파급력이 빠르고 크다”고 진단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조중동 광고주를 압박하는 소비자운동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정민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이제는 조중동 불·탈법 판촉의 대상이던 주부 누리꾼들이 직접 광고주에게 항의전화를 거는 등 조중동의 ‘돈줄’을 죄며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 전망과 과제 언론단체들은 조중동 반대운동 확산을 위해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언련을 중심으로 관련 단체들은 조중동 반대 범국민 연대기구 발족을 서두르고 있다. 민언련은 또 조중동의 신문고시 위반 실태와 방송진출 계획 등 실상을 제대로 알려줄 인터넷 사이트를 준비 중이다. 언론 전문가들은 10~20대가 겪은 ‘학습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이들이 미래의 신문독자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최민희 전 민언련 사무총장도 “당장 신문시장 지형이 바뀌기는 어렵겠지만 조중동을 거부하는 정서가 지속된다면 결국 조중동은 노년층만 보는 ‘고령신문’으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유진 민언련 사무처장은 “조중동 반대운동은 과거 안티조선운동이 밑거름이 됐다”며 “비단 이번 광우병 파동에 그치지 않고 공영방송 수호나 신문시장 여론 독과점 문제 같은 한국언론의 핵심 의제까지 공유하는 범국민 언론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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