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가 서울등 수도권 몰려…성남 수정구 다섯에 한집꼴
바깥으로 난 좁은 창문 위쪽으로 스쿠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골목을 내달린다. 조아무개(57)씨에게 이런 풍경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현실이다. 조씨는 성남시 수정구 산성동 일대에서 10년 남짓 반지하방을 전전하고 있다. 눅눅한 이불에 오래된 곰팡이 탓인지 목은 항상 칼칼하고, 자고 일어나도 머리가 맑지 않다. 조씨는 “보증금 1천만원에 월 12만원으로 방 2개를 구하려면 땅으로 내려앉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씨만이 아니다. 수정구 전체 9만가구 가운데 21%인 1만8천가구가 지하에 있다. 바로 옆 중원구 8만6천가구 중에 1만5천가구(18%)도 마찬가지다. 다섯 가구에 한 가구꼴로 지하에 사는 셈이다.
이 일대의 열악한 주거 환경은 1971년 ‘광주 대단지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독재정권은 도시빈민들을 서울 외곽인 성남으로 몰아냈고, 정부는 30년이 지나도록 이 지역을 방치했다. 70년대 이곳에 정착한 김종해(65)씨는 “80년대 들어 판잣집 2~3개를 합치는 재건축이 진행됐고, 좁은 땅에 방을 많이 만들다 보니 지하방과 옥탑방이 부지기수로 생겼다”고 전했다. 이 방들은 지금도 싼 집을 찾아 서울을 빠져나오는 이들의 차지가 되고 있다. 산비탈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수정구와 중원구는, 탄천 주변으로 비싼 아파트들이 늘어선 인근 분당구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조씨처럼 반지하와 옥탑방 등에서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160만명이나 된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반지하를 포함한 지하방에 58만6천가구, 142만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옥탑방에는 5만1천가구에 8만7천명이, 판잣집과 비닐하우스 등에는 4만5천가구에 11만명이 산다. 이들 중 93%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몰려 있다.
심 의원은 “주택 보급률 106%로 집이 남아돌지만, 주택 소유가 집중되고 임대주택이 턱없이 부족해 이런 현상이 생겼다”며 “임대주택 공급을 서두르되, 부동산 빈곤층의 지역 분포까지 고려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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