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근거 없이 상피세포 수집하려 직장에 들이닥쳐
청송감호소에서 2002년 출소한 이아무개(42)씨는 지난달 25일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오지 않는다.
일터인 아파트 보일러실로 찾아온 서울 노원경찰서 소속 형사들에게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입 안의 ‘상피세포’를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형사들은 “인근에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그러는데, 유전자 좀 보자”며 면봉으로 이씨의 입 안을 긁어갔다.
고등학교 졸업 뒤 강·절도로 교도소를 네차례나 들락거린 이씨지만, 이제는 마음 잡고 몸이 불편한 67살 노모를 모시고 잘 살아 보려던 차였다. 그러나 직장에까지 형사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자신의 과거를 모르던 직장 동료들 눈치가 이상해졌다.
이씨는 “몇푼 못 받는 직장이지만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직장 잃으면 경찰이 내 인생 책임질 거냐”며 “스트레스 때문에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행 법률상 수사기관이 범법자를 포함한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채취할 법적 근거는 전혀 없다.
살인·성폭력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이의 머리카락, 침, 정액 등을 추출해 보존할 수 있는 ‘유전자 감식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안’이 지난 8월 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으나 올해 안 통과는 불투명하다. 개인정보 침해 논란 때문이다.
이씨의 상피세포 채취에 대해 노원경찰서 박영진 형사과장은 “임의동행이나 (음주 운전자의) 채혈과 마찬가지로 본인 동의를 구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씨는 “찾아온 형사가 한번만 해 가면 두번 세번 찾아오지 않겠다고 해,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순수한 자발적 협조가 아니었음을 호소했다. 이씨는 “형사가 이런 식으로 300여명을 조사했다고 말했다”고 전했으나, 경찰은 사실 여부 확인을 거부했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는 “현실적으로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을 받았을 때, 싫어도 다른 일로 불이익을 받을까봐 협조할 수밖에 없다”며 “실정법상 근거도 없이 유전자 정보를 채취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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