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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명문대’ ‘일류대학’…서열화하는 ‘슬픈’ 표현들

등록 2021-12-13 16:39수정 2021-12-14 12:37

[차별 표현은 이제 그만!]
“지잡대신데 어떻게 번역가 잘하시네요.”

영화 번역가 황석희씨가 자신의 소셜미디어 채널 ‘묻고 답하기’를 통해 받았던 질문이라며 이 내용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스파이더맨> <보헤미안 랩소디> 등을 번역해온 우리나라 대표 영화 번역가다.

이미 한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에게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라는 차별의 표현으로 출신 학교를 운운하다니. 이 사연과 관련한 기사에 누리꾼들이 단 댓글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분 참 슬픈 사람” “가진 게 학벌뿐인 인생인 듯”.

‘지잡대’와 ‘명문대’는 학벌주의적 차별 표현이다. 요즘은 학벌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잡대’와 ‘명문대’는 학벌주의적 차별 표현이다. 요즘은 학벌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데 우리 주변엔 생각보다 이런 ‘슬픈 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학벌주의’에 빠진 이들 말이다. 이들에겐 사회가 성적순으로 만들어놓은 대학 순위에서 서열상 앞선 학교에 다닌 사람이면 존경받을 만하고, 그렇지 않다면 무시와 혐오, 차별을 해도 된다는 생각이 있다. 출신 대학이 곧 누군가가 가진 능력의 모두이고, 심지어 그 누군가의 인격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명문대 출신 아나운서’ ‘명문대 출신의 능력자’ 등은 미디어에서 하도 많이 들어 익숙해졌지만, ‘이름난 좋은 학교’라는 의미의 ‘명문대’(名門大)라는 표현에도 차별적 태도가 보인다. 특정 대학을 우월하게 묘사함으로써 다른 대학들을 낮춰 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영역의 차별 표현 및 대체어 목록’을 통해 ‘일류대학’이라는 표현 역시 대학을 서열화하는 차별적 표현으로 손꼽았다.

비단 학벌 관련한 표현만은 아니다. 우리가 쓰는 표현 중엔 사회 구성원을 줄 세우는 표현들이 꽤 많다. 특히 오직 서울을 중심으로 다른 지역을 바라보는 표현들은 우리 사회 지역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하게 해준다. “얼굴만 봐선 너무 세련됐더라. 지방 출신 같지 않던데.” 이 말엔 ‘지역 출신=촌스럽다(세련됨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는 근거 없는 논리가 엿보인다.

주거 형태를 기준으로 삼아 서열화를 조장하는 표현도 많이 등장한다. 한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임대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임대 아파트’를 비하하는 ‘휴거’(휴먼시아+거지)와 ‘임거’(임대 아파트+거지)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거기 사는 애랑 놀지 마라!” 누군가 ‘사는 곳’을 그를 평가하는 잣대로 삼는 어른들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결과일 테다.

제도의 변화로 출신 학교에 따른 채용의 공정성이 개선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눈에 들어온다. 지난 9월 재단법인 ‘교육의 봄’이 주최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현황’ 포럼에선 고용노동부의 ‘공정채용정책 현장실태 조사 및 정책이슈 분석’ 보고서를 토대로, 공공기관 340곳 가운데 253곳의 4년간(2016~2019년) 신규채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에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된 지 2년 반 만에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8%에서 5.3%로 감소했다. 반면 비수도권 대학 출신 비율은 같은 기간 43.7%에서 53.1%로 증가했다.

제도 변화만으로 차별의 문화가 단번에 모두 바뀌는 건 아닐 테다. 대학입시에서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입학한 친구에게 모욕하듯 ‘지균충’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었던 것처럼 블라인드 채용으로 입사한 누군가에게 “제도 덕에 운 좋아 뽑혔다”고 하는 이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 머릿속에 누군가의 출신 학교 및 그가 사는 지역, 주거 형태 등이 그의 능력이자 모든 것이라고 보는 편견과 착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학벌과 지역, 주거 형태에 따른 차별 문화는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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