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읽기 깊이 보기 /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
4학년 딸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 혜진이는 몸이 약간 불편하다. 어릴 때 심하게 앓아 몸 한쪽을 잘 쓰지 못한다. 둘이 어떻게 친해졌느냐 물으니, 혜진이의 천사 같은 미소 덕분이라고 얘기한다. 작년 가을 낯선 도시의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는데, 너무 외로워 그만 울어버렸더란다. 그런데 한 아이가 아무 말 없이 맑게 웃으면서 곁에 서 있더란다. 그 따뜻한 미소가 딸아이의 마음을 녹였고, 그래서 둘은 정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아이 학교에 갔다가 둘이 노는 모습을 우연히 봤는데 깜짝 놀랐다. 천방지축 딸아이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그네 있는 곳까지 뛰어가는데 그 뒤를 친구가 불편한 몸으로 열심히 달려가는 것이다. 먼저 그네에 도착한 딸아이는 양보도 하지 않고 냉큼 그네를 탔고, 혜진이는 뒤에서 한참을 밀어준 다음에야 둘이 자리를 바꿨다. 세상에, 몸이 불편한 친구에게 양보할 줄도 모르는 아이라니. 난 너무 놀라서 집에 돌아온 딸아이를 야단치고야 말았다.
“엄마, 난 있지, 혜진이가 몸이 불편하다는 걸 자꾸만 잊어 버려. 그런데 꼭 내가 일부러 기억하면서 양보하고 그래야 해? 좀 이상하지 않겠어? 동수도 그렇잖아.”
동수? 아, 동수는 얼마 전에 읽은 책의 주인공이다. 매일 엄마가 업어서 등하교를 시켜야 하는 장애아동이다. 그러나 보통 아이들처럼 칠판 앞에 나가 수학 문제도 풀고, 운동회 때는 달리기도 한다. 어느 날 순찰대의 경찰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나타난다. 매일 동수의 등하교를 책임져 주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으며 경찰 오토바이로 등하교를 하던 동수는 신문과 방송에도 나온다. 인터뷰를 하고, 각종 연출된 사진도 찍고. 그렇지만 이렇게 신나야 하는 장면을 읽으면서도 뭔지 불안하고 개운치 않다.
인터뷰를 하러 운동장에 나갈 때는 업어주면서, 기자들이 다 돌아가고 난 다음에는 혼자 기어서 돌아오게 만드는 담임 선생님, 기사가 실린 신문을 100부나 주문한 교장 선생님, 각반 게시판에 붙여놓으라고 지시하는 교감 선생님…. 어느 날 갑자기 그 경찰 아저씨는 오지 않는다. 그 기사 덕분에 표창장을 받고 승진을 해서 다른 경찰서로 옮긴 것이다. 특별한 대접을 원하지 않았던 동수에게 특별한 대접을 해주더니 자기 욕심을 채우고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딸 아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혜진이 생각을 했다고 한다. 혜진이가 조금 불편하다는 걸 자꾸만 잊어버려서 미안했는데 동수를 보니 별로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단다. 엄마보다 훨씬 나은 딸이다.
경찰아저씨는 이 이야기에 한 번 더 등장한다. 한참이나 연락이 없던 그 경찰 아저씨는 갑자기 커다란 선물을 안고 학교에 나타난다. 그리고는 경찰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달라고 부탁한다. 끝까지 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이다. 이 책, 참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이었는데, 글쓴이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와 한 경찰아저씨 사이에 정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 감동이 깊었나보다.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 고정욱 글. 사계절/7천원
범경화/대전 복수초등학교 사서교사 bkh09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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