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십 년이 가까워 온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어머니만 생각하면 나는 아득해진다. 작은 키에 늘 환한 웃음을 지니고 사셨던 어머니. 어머니의 숨결로 세상을 살아왔고, 어머니의 손길로 삶의 길을 어려움 없이 걸어온 내게, 어머니의 부재는 마치 내 생의 배경이 없어져 버린 상황과 같았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선연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그때 우리 집에서는 누에를 많이 쳤었다. 한창 누에들의 먹성이 좋아질 때면, 집 곁의 뽕나무 잎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어머니는 제법 먼 산골짜기까지 뽕을 따러 가셨다. 떡바우골, 고래실, 돌투바니, 마랑골, 오두재 같은 고향 마을의 골짜기 이름도 그때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지명이었다. 어머니는 그 숱한 골짜기를 헤매며 산 뽕을 따 오셨다.
그런 날이면 나는 어머니 없는 집에서 한나절을 기다림으로 목을 빼곤 했다. 내 기다림이 지칠 무렵, 어머니는 집 앞 좁은 논밭길을 걸어오시곤 했는데, 머리 위에는 당신보다 더 큰 뽕 짐이 얹혀 있었다. 햇살 나른한 날이면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커다란 뽕 짐이 저 혼자 걸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마루에 뽕 짐을 내려놓으신 어머니는 한 숨 고르고 보따리를 풀러 꽃나무 가지 하나를 내게 건네주곤 하셨다. 커다란 꽃이 달린 그 꽃을 내게 전해주며, 어머니는 하루 종일 당신의 눈 밖에 둘 수밖에 없었던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삭히셨을 것이다. 희고 탐스럽던 그 꽃, 향이 더할 나위 없이 은근하고 곱던 그 꽃은 함박꽃이었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냄새를 어머니가 건네주시던 함박꽃 향과 막 풀어헤친 뽕 짐에서 피어오르던 뽕잎 향으로 기억한다.
함박꽃은 산목련, 목란, 개목련, 천년화 등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가장 큰 꽃이다. 그래서 함박눈, 함박웃음, 함지박처럼 크고 환한 것들의 이름에 함박이란 말이 붙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어머니를 그리는 함박꽃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그 함박꽃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더없이 넓고 환해진다. 이제는 돌아가신 어머니는 그렇게 내 마음 속에 함박꽃나무 한 그루로 살아 계신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운 누군가의 나무 한 그루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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