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
정희야, 아니 이제는 한정희 선생, 이렇게 불러야 되겠지?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네 이름을 부르면, 교복을 단정히 입고 환하게 웃던 너의 고등학교 3학년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선생이 된 네게 여전히 ‘정희야’ 하고 부르게 되나보다.
교단에 꿈을 두고, 어려움 속에서도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쓴 너를 알기에, 너의 교단이 얼마나 소중한지 짐작이 된다. 너는 때로 학교에서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리면 내게 전화를 걸어 내 의견을 묻곤 했지. 그런 너를 보면서, ‘아, 내 제자 정희가 정말 올바른 교사, 좋은 선생님으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곤 했단다.
지난번에도 너는 너희 반 아이들에게 생긴 문제 때문에 내게 전화를 걸어왔었지. 아버지와의 갈등과 불우한 환경 때문에 엇나가는 아이에 대한 문제가 그것이었다. 아이의 환경과 행동 때문에 답답하고 안타까워하던 너의 목소리 속에, 그 아이에 대한 네 사랑이 듬뿍 느껴졌다. 그런 사랑이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잘 풀릴 거라고 믿는다.
네가 처음 교단에 설 때, 나는 이런 얘기를 했었다. ‘편애하는 교사가 돼라, 편애하지 않는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교사다.’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대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은 아닐 거다. 공부 잘 하는 아이, 집안 좋은 아이, 그냥 두어도 모든 것을 잘 하는 아이에게보다, 가난한 아이, 공부가 뒤떨어지는 아이, 말썽쟁이, 문제가 있는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갖는 교사의 편애야말로 교육에서 필요한 편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다. 너는 내 뜻대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구나. 네게 이젠 제자라기보다는 교직의 동지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게다.
며칠 전 주말, 고향집에 갔었다. 집 마당에 자갈을 깔아 놓았는데, 몇 해 전 마당가에 심어놓은 꽃잔디들이 눈부시게 피어 있었지. 그런데 꽃잔디들은 심어놓은 곳만이 아니라 전혀 뿌리를 내릴 수조차 없는 자갈 위에서까지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워 곱디고운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붉은 꽃잎 하나를 세상에 피워내기 위해, 꽃잔디들은 팍팍한 돌밭에 온 몸으로 맞서 뿌리내렸을 것이다.
그 꽃 잔디처럼,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지금 세상에 나서기 위해 온 몸으로, 안간힘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중일 거야. 그래서 성장의 고통 속에 있는 아이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일 테고 말이다. 입시와 진로 때문에 아무리 강퍅한 현실이라도, 아이들이 꽃피울 내일을 생각하며 힘내렴. 그게 교사의 길일 테니까 말이다.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