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츠는 자유로운 상태의 동물과 일상적으로 접촉 하며 관찰함으로써 자연의 진실을 알고자 했다. 야생 거위와 함께 생활하며 연구 중인 로렌츠. 사진 출처: <야생 거위와 보낸 일년>(한문화 펴냄)
“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인간은 자연의 생생한 현실에 더 깊고 진한 감동을 느낀다”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콘라드 로렌츠의 ‘솔로몬의 반지’ 동물행동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콘라드 로렌츠가 1949년 출간한 책의 제목을 <솔로몬의 반지>라고 번역하는 것은 저자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영어권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는 원제를 내버려두고 ‘솔로몬 왕의 반지’(이는 책의 제8장 제목임)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이미 그렇게 굳어졌다. 솔로몬 왕은 마법의 반지 덕분에 동물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로렌츠는 솔로몬이 대단히 현명했거나 아니면 대단히 우둔했을 것이라고 비꼰다. 반지 없이는 동물과 소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동물과 사귀는 데 마법의 반지를 사용했다는 것이 무척 못마땅한 것이다. “살아 있는 존재는 마술이나 요술 없이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즉 진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동물과 진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은 마법이 아니고 과학이다(책 원제의 ‘그’는 마법 없이 동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학적 업적을 이룬 로렌츠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행동학자로서 그에게 ‘과학적’이란 어떤 것인가? 자유로운 상태의 동물과 일상적 접촉을 하며 그들을 관찰함으로써 자연의 진실을 아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과학적 자세가 품고 있는 네 가지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다. 자유, 일상적 접촉, 관찰 그리고 자연의 진실이 그것이다. ‘자연의 진실’로부터 시작해서 이 핵심 개념들을 짚어 보자. 그는 “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인간은 자연의 생생한 현실로부터 더욱 깊고, 더욱 진한 감동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므로 과학적 연구의 객관성, 자연에 대한 지식 등이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기쁨을 감소시킨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다. 그래서 그는 “동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 주는 데는, 엄격한 자연과학적 작업에서처럼 사실에 충실한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로렌츠에게 동물과의 일상적 접촉과 과학적 관찰은 뗄 수 없다. 동물행동학 연구는 “살아 있는 동물과의 직접적인 친숙을 요구한다.” 즉 동물과 함께 살면서 서로 바라보며 서로 알아 가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과학자만이 동물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동물이 과학자를 매우 진지하게 관찰한다는 것이다. ‘동물과 사람의 상호 관찰’을 발견한다는 것은 로렌츠의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다. 결국 사람이 동물에게 ‘말을 걸면’ 동물 역시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다. 또한 이 분야는 관찰자의 초인적인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에 사랑 없이 동물에 대한 이론적 관심만으로는 이 모든 것을 감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로렌츠는 “바로 사랑이 있음으로 해서 동물들 사이의 행동 유사성을 통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유, 이것은 로렌츠에게 과학적 탐구의 기본 조건이자 세상을 대하는 그의 철학 정신에서 핵심적인 것이다. 그는 “정신적으로 활발한 동물은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해줄 때에만 참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말은 성경의 한 구절을 뒤집어서 읽게 한다. 자유가 우리에게 진리를 보게 하리라.
“순수하게 방법론적이고 학문적인 이유로 고등동물을 무제한의 자유 속에 기르는 것”은 로렌츠의 특기였다. 그가 행한 연구의 상당 부분은 “자유롭게 사는 길들여진 동물들에게서 얻어진 것”이다. 여기서 ‘자유롭게 사는 길들여진’이라는 표현은 얼른 보아 형용 모순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과학자 로렌츠의 철학 정신을 요약한다. 그는 자연의 필연적 법칙을 찾는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자연에서 자유를 발견했던 것이다.
김용석/영산대 교수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