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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얘들아,나도 같이 놀고 싶어!

등록 2006-06-18 18:36수정 2006-06-21 17:49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내가 만약 선생님이라면….’

“내가 만약 선생님이라면 난 정답을 문제지에 표시해 놓겠어” “매달 월급날 아이들에게 피자 사 줄 거야.” “국어고 뭐고 일주일 내내 체육만 하겠어.” “교실에 침대, 컴퓨터 다 설치해 놓고 애들 무조건 편안하게 해 줄 거야.”…… 그래, 실컷들 선생님 해라. 어차피 가정법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수 억 년(?)년 전이다. ‘파월 국군 장병 아저씨께’라는 위문 편지를 쓴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 국민학교 때. 자욱한 포연 속,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시체들, 거꾸로 박힌 소총, 그 위에 얹혀진 끈 떨어진 철모…. 지금 생각해도 그땐 왜 그렇게 군인 아저씨가 멋있어 보였는지. 키도 큰데다, 힘도 세고, ‘투다다다’ 공산당을 쳐부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우리의 용감한 ‘국군 장병 아저씨!’

가끔 군대 간 졸업생이 찾아온다. 그런데 그 늠름하던 국군 장병 아저씨는 다 어디 가고 얼굴 해맑은 ‘애’가 군복 입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산뜻하게 깍은 머리 하며 절도 있는 몸가짐. 훈련 좀 받았다고 말끝에 꼭 ‘습니다’를 붙이는 걸 보면 군인티는 나는 것 같은데. 글쎄, 그래도 내 보기엔 영락없는 애다. 그것도 어린애.

나 어렸을 때 우리 선생님은 나이가 많으셨다. 정확히 몇이셨는지는 모르지만 어림짐작 내 나이 어느새 그때의 그 선생님 나이를 훌쩍 뛰어넘고 말았다. 그러나 나, 아직도 그 당시 국민학생 마음 그대로다. 어쩌다 가르친 게 틀렸을 때는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로 여리고, 짜식들이 나만 홀랑 빼고 지네들끼리만 뭐 사먹을 땐 가슴이 다 벌렁거릴 정도로 유치하다. 그뿐인 줄 아는가. 아침에 지각이라도 할라치면 허겁지겁 음식 삼키랴, 단추 채우느라 정신이 다 없다. 붙여 주지 않아 그렇지 그들과 같이 오순도순 오목도 두고 싶고, 진도고 뭐고 하루 왼종일 축구만 하고 싶고, 수업이고 뭐고 키키덕거리며 애들과 같이 수다도 떨고 싶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 날 무시한다. 어른이 왜 애들 노는 데 끼어드냐며 피한다. 마치 어렸을 때 내가 우리 선생님을 피하듯 말이다.

그러나 난 안다. 이만큼 나이 들어 보니 알게 됐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속은 애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 나보다 나이 많은 자 역시 나와 똑같이 어리다는 것 또한 잘 안다. 교감이고 교장이고, 장관이고 대통령이고 그들 마음 속엔 조그만 어린애가 들어 앉아 있다는 걸 다 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이 많은 척하고 싶은 것 또한 사실이다. 꾸벅꾸벅 절 받고 싶고, 말 한 마디에 모두 ‘네, 네’ 하게 만들고 싶은 것 또한 사실이다. 말 그대로 ‘대접’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접’의 대가가 바로 ‘그들로부터의 소외’라는 것, 왜 깨닫지 못하는지. 우리 어른들 정말 어리다.(옛말에서 ‘어리다’는 ‘어리석다’라는 뜻이다)


“선생님, 선생님은 만약 학생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내가 만약 학생이다?” “네” “그러면 ‘선생님, 같이 놀아요!’라고 하겠어” “?”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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