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진/한국싸이버대 교수
학습 클리닉 /
성희는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밤 11시에 귀가해, 컴퓨터 앞에 앉아 새벽 2시까지 교육방송 강의를 수강하는 등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러나 성희는 늘 학교 진도조차 따라가기 어렵다고 한다. 성희의 표정에서는 ‘열심히 해도 되질 않으니 너무나 속상하다. 난 해도 안되는 게 아닐까?’라는 절망감을 읽을 수 있다.
공부에 대해 상담할 때 종종 일주일 계획표를 펴놓고 이야기를 한다.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성희의 시간표에는 공부하는 시간 밖에는 없다. 수업, 자율학습 그리고 컴퓨터로 강의 수강하기. 이렇게 쉬는 시간이나 노는 시간이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 그런 시간들은 공부하는 시간 속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차마 쉬는 시간을 떼어놓지 못했을 뿐, 사람은 기계가 아니므로 쉬지 않고 종일 공부만 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와 같이 은근슬쩍 공부하는 시간 속에 숨어있는 노는 시간의 파괴력은 더 막강하다.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닌 애매한 시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성희야, 하루종일 공부만 하네. 그것도 새벽 2시까지 말이야. 선생님이라면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성희는 어떤 방법으로 좀 머리를 식히니? ” 나의 질문을 듣고서야 비로소 성희는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는 듯 이야기를 하였다. “저~, 인터넷으로 방송 들으면서 좀 지겨워지고 그러면 애니메이션 한두 편을 봐요.”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간도 계획표에 표시를 해놓고 보니, 그 비중이 상당하다. 실제로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공부한다고 생각했던 3시간 중, 이렇게 머리를 식히거나 졸거나 하는 시간을 빼면 공부에 들어간 시간은 1시간 정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희는 공부한다고 생각했던 시간 속에 노는 시간이 숨어 있다는 것을 더 명확하게 자각하게 되었다. 처음보다 성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내가 공부를 해도 안 되었다기 보다는 공부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별로 없었네’라는 자각이 공부할 맛(?)을 회복시켜준 것이다.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의외로 다른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게 되니, 그것을 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되었다. 성희와 함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어떤 다른 활동을 할지, 애니메이션을 보더라도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 조절할지 대한 이야기는 오히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공부 시간은 많은데 왜 이렇게 성적은 안오르는거지? 왜 이렇게 진도가 안나가는거야?’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한번쯤 살펴보자. 공부시간이라고 생각했던 시간 속에 다른 시간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조절은 자각이 일어난 다음에야 비로소 할 수 있다.
신을진/한국싸이버대 교수 ejshin8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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