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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고3 전야…얘들아,씩씩하게 살아남거라

등록 2007-03-04 19:10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얼마 전, 이제 고3이 되는 제자들이 반창회를 하겠다며 학교로 몰려왔다. 본격적인 고3 전쟁을 앞두고 옛날 동포들과 회포나 풀겠단다. 중2 때 담임했던 녀석들이니 그 사이 벌써 5년이 흘렀다. 그렇게 봐서 그런가 나타나는 녀석들마다 푹석 ‘늙어’ 보인다. 변변찮은 공부에 오죽이나 시달렸겠는가. 한 스무 명 남짓 모였는데, 서로 반갑다며 난리법석이다. 역시 옛 전우란 좋고 편한 것이다.

마침 점심 무렵이라, 무엇을 먹이나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됐는데, 어쭈, 한 녀석이 나서서 점심을 해결하겠다며 참가비를 추렴한다(사전에 공지를 했단다). 모이기만 하면 뭐 사달라며 협박을 일삼던 녀석들이, 정말 늙긴 늙은 모양이다. 그러는 중에 한 녀석은 즈이 엄마 약국에서 집어온 것이라며 영양제를 내민다.

“야아, 느들 사람 됐네!”

“한두 놈도 아니고, 이젠 샘 그만 벗겨먹어야지요.”

하긴 녀석들이 많이 ‘벗겨먹긴’ 했다. 먹성에 관한 한 이 나이 때가 천하장사급 아닌가. 언젠가 “불쌍한 청춘들 좀 구제해 달라”며 다섯 명이 찾아온 적이 있는데, 자주 보는 것도 아니라 삼겹살 집으로 데려가 양껏 먹으랬더니 순식간에 15인분을 먹어치웠던 적도 있다.

암튼, 배달 온 피자를 나누어 먹으며 여기저기 웃음이 터지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누가 얘기를 이끌 필요도 없다. 그러는 중에도 성적 얘기는 애써 피한다. 한 녀석이 눈치 없이 에스(S)대 수시 운운하다 주변의 뭇매를 맞는다. “야, 누가 쟤 좀 밖으로 모셔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로 귀엣말을 주고 받으며, 저 놈은 인생이 폈구나, 그런 기색이 역력하다.


두세 시간이 지나 모임이 마무리되는데, 반창회를 주선한 여남은 명이 따로 남는다.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녀석들이니, 비로소 피차 간에 격의없는 인생 상담이 시작된다. 서로 칭찬과 구박을 주고 받으며 허물이 없다.

아까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호석이란 녀석이 입을 뗀다. “나는 공부 종 쳤다. 미용 공부하기로 했다. 아버지랑 두 달을 싸웠다.” 그러자, 다른 녀석이 받는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바로 군대다, 직업군인 할란다.” 그러자 옆 녀석들이 아우성을 친다. “얌마, 너는 군대 체질 아냐!” “아니다, 고민 많이 했다. 나는 그 길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어스름이 깔린다. 웃고 떠들 때는 그렇게 밝더니, 가방을 둘러매며 일어서는데 어쩐지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중2 때만 해도 희망이 변호사요, 의사요, 선생님이었는데, 이제 현실 속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비로소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고 있는 거다. 앞으로 얼마나 꺾이고 넘어지고 숱한 고비를 넘을까.

교문까지 배웅하며 속으로 빈다.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 남거라. 까짓 거, 하다 보면 무엇인가 되지 않겠느냐. 넘어지지 않고 어찌 자전거를 배우랴!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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