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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유포니아’를 실현한 사람들

등록 2007-03-18 17:10수정 2007-03-18 17:15

<라디오 스타>는 조락한 가수 최곤이 강원도 영월에 내려가 지역 라디오 프로램을 진행하면서 ‘방송의 이상향’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민의 삶이 자연스레 매체에 실리고, 나아가 미디어 그 자체가 삶이 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라디오 스타>는 조락한 가수 최곤이 강원도 영월에 내려가 지역 라디오 프로램을 진행하면서 ‘방송의 이상향’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민의 삶이 자연스레 매체에 실리고, 나아가 미디어 그 자체가 삶이 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용석 교수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이준익의 <라디오 스타>

대중매체는 많은 비판을 받는다. 통속적이라는 비판, 상업적이라는 비난, 이에 더해서 타락한 자본주의의 전령이라는 욕까지 먹는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비판들이다. 한편 미디어 전문가들은 특히 대중매체가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 비판해왔다. 그런 비판의 핵심은, 방송 모델로 대표되는 대중전달 매체의 일방성이다. 곧 소통이 상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방송국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보내고 대중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즉 방송은 ‘보냄’과 ‘받아들임’이라는 송출자와 수용자의 일방적 전달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방성은 방송국의 모니터링 작업과 같은 수용자 참여 방식으로 보완되는 등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지만, 방송의 기본적인 틀은 일방적 소통이라는 것이 미디어 비판의 바탕에 깔려 있다.

대중매체의 일방성은 또한 소통의 내용이 ‘의미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비판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허버트 갠스 같은 미디어 연구가는 현대문화 분석에서 “대중문화, 그것도 최소한 매스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는 부분의 대중문화는 보고 들을 때만 즐기고는 곧 흘려버리기” 쉬우며, 대부분의 방송 프로그램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잠시 머무르고 곧 사라져 버리는 단명한 것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사실 대중매체를 비판하기 위해 드는 모든 요소들은 거의 그 매체의 본질적 속성이다. 그러므로 그 요소들 없이 대중매체가 존재할 수도 없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세상 속으로 파고든다는 의미에서 통속적이며, 재원과 수익 없이 미디어를 운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상업적이다. 매체 기능의 일방성 또한 보완될 수는 있어도 배제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갠스의 말처럼 대중매체로서 방송은 무의미하게 사라져 버리는 것들로 채워져야 하는가?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그렇지 않은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곤은 한때 가수왕이기도 했던, 한물 간 록스타다. 폭력 사건으로 유치장 신세까지 지게 될 형편에 있는 그를 위해, 매니저 박민수는 폐쇄 직전에 있는 강원도 영월 방송국의 라디오 디제이 자리를 따낸다. 곤은 내키지 않지만, 민수의 설득에 울며 겨자 먹기로 방송을 시작한다. 생기라곤 하나 없는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 프로그램은 방송 사고까지 내지만, 어떤 계기로 활력을 얻고 혁명적 출발을 한다.

한물간 스타·매니저·좌천 피디
사람 냄새 나는 공동체 방송 생산
미래 미디어의 지향점 제시

그 계기는 바로 미디어가 ‘사람들’과 뜨겁게 만남으로써 마련된다. 특히 서민들의 삶이 방송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중매체가 탄생한다. 최곤은 커피 배달 온 시내 다방 김양을 즉석 게스트로 등장시키고, 그녀가 마이크 앞에서 진솔하게 털어놓은 사연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낮에 할 일이 없어서 그 방송을 듣는다는 실업자를 위해 구직 방송을 해주고, 지방 방송이라서 서울까지 전달 안 된다고 해도 “내가 크게 말하면 되잖아!” 하면서 막무가내로 고향 떠난 아들에게 안부 전하는 아버지의 고함을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며, 화투 치다가 고스톱 규칙 때문에 말싸움 난 할머니들을 위해서 친절한 설명을 해주고 서로 화해하도록 한다. 또한 자신의 꽃가게를 자주 찾는 아가씨를 짝사랑하지만 사랑 고백을 못하는 자칭 ‘영월의 바보’라는 꽃가게 청년을 위해, 아가씨에게 꽃 한 송이씩 전달하는 ‘몰래 이벤트’를 제안해 두 사람을 맺어준다. 무엇보다도 영월의 록밴드 이스트 리버의 연주를, “검증 안 된 아이들”이라는 반대를 무릅쓰고 공개 방송한다. 이제 대중에게 남은 것은 눈물나게 감동하는 일뿐이다.

대중매체가 서민의 삶을 실어 나른 것이다. 아니, 미디어 그 자체가 삶이 된 것이다. 이것은 조락한 가수 곤, 착하기만 한 매니저 민수, 원주에서 영월로 좌천된 강 피디, 무기력했던 지국장, 사람 좋은 박 기사가 이루어낸 것이다. 그들은 바로 ‘유포니아’를 실현한 사람들이다.


유포니아라고? 아 참, 독자들을 위해 이 말의 뜻을 설명해야겠다. 이것은 내가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방송의 이상향’이라는 의미로 만들어낸 말이다. 그리스어로 ‘없는(ou) 장소(topos)’라는 뜻의 유토피아(utopia)에 빗대어, ‘없는(ou) 소리(phone)’라는 의미로 유포니아(uphonia)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포니아는 ‘이상적인 라디오 방송’을 뜻한다. 매체가 감동을 사전 기획하는 시대에 진솔한 서민의 삶이 자연스레 매체에 실려 있다면, 그것은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가득 실어 나른다면 더 할 나위 없다.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라디오는 ‘감춤’과 ‘드러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매체다. 이는 최곤이 방송에서 하는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제 모습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전 예전에 라디오 들을 때, 디제이 모습이 참 궁금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제 방송을 듣는 여러분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라디오는 모습은 감추고 소리에 모든 의미를 싣는다. 그러므로 라디오가 삶이 녹아 있는 ‘의미의 소리’를 실어 나를 때, 그 효과는 배가된다.

<라디오 스타>는 옛 것(흘러간 노래, 구식 매니저, 다방, 선술집, 추억 그리고 라디오 방송 등)에 대한 향수를 담은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문명사적 차원에서 미래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방식을 담고 있다. 특히 미래의 방송 매체가 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미디어가 다양한 성격의 작은 공동체들을 겨냥해야 하며, 종종 한 사람을 수용자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김용석/영산대 교수
김용석/영산대 교수
앞으로의 방송 모델은 더 이상 브로드 캐스팅(broad-casting) 위주가 아니라 내로우 캐스팅(narrow-casting)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를 위한 우선적 시험 무대가 라디오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매클루언이 그랬던가. “원시 부족의 뿔나팔이나 고대 북의 울림처럼 작동하는” 라디오는 “잊혀진 심금을 울리는 마술적 힘을 가진 잠재 의식의 공명실(共鳴室)”이라고. “인간의 마음과 사회를 감동의 소용돌이로 바꾸어 놓는 힘을 가진 라디오 매체”가 우리 삶과 어떻게 맺어지는지에 따라 현대 문명의 풍요도 또한 바뀌리라.

김용석/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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